조선 후기 모란문 청화백자는 당대 청화백자의 수요층의 취향을 반영하는 기물이다. 왕실과 신흥 부유층이 선호하는 미감이 이전 시기와 다르게 장식적이고 화려하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모란은 관상화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왕실의 애호 대상이었으며, 상서를 나타내는 의미가 부여되어 왕실의 공간을 장식하는 문양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본 작품은 도안화된 문양과 회화적인 문양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연부가 높고 견부에서 부풀어 동체 저부에서 좁아지는 모양이다. 구연에는 선문을 이중으로 둘러 장식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도안화 된 운문이 간략화 되어 시문 되었다. 견부의 여의두문은 청화의 농담을 사용하여 화려함을 더했다. 동체에는 두 송이의 모란절지문이 앞뒤로 시문되어 있다. 저부에서 초문과 함께 커다란 모란 한 송이가 피어오르고, 그 위로 두 개의 가지로 나누어지며 꽃봉오리와 작은 모란 한 송이가 배치되었다. 동체의 앞뒤로 배치된 모란절지문 사이에는 한 마리의 나비가 시문 되었다. 가는 모래를 받쳐 구운 것으로 보이는 굽의 안쪽에는 대大자가 음각되어 있다.
[참고문헌]
정승원, 「조선후기 모란문 청화백자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24.
[수록처]
광주 조선관요박물관, 『조선도자수선』, (재)세계도자기엑스포, 2002, 도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