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4-12-05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본관 B1
연락처
02-735-1110 / 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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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석지 채용신
오륜행실도 10폭병풍 상세보기
1924 ㅣ 비단에 수묵채색
전체 87.5×31㎝, 상단 39.5×30.5㎝, 하단 47.5×30㎝
추정가
KRW  
200,000,000 - 50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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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는 세종(世宗, 재위 1418-1450)때 간행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중종(中宗, 재위 1506-1544)때 간행된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를 합본하여 정조(正祖, 재위 1776-1800) 21년인 1797년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 1735-1815)의 주갑週甲을 기념하여 간행된 행실도류의 서적이다. 조선(朝鮮, 1392-1910)이 개국한 이래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백성 교화의 수단으로서 행실도류 서적은 꾸준히 간행되었다. 세종 16년인 1434년 간행된 『삼강행실도』는 효자孝子, 충신忠臣, 열녀烈女 각 110인의 이야기와 그림이 첨부되었으며,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12년인 1481년에 한문본에 수록된 330인 중 효자, 충신, 열녀 각 35인을 선정하여 언해본으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중종대에 들어 『이륜행실도』가 간행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예조판서禮曹判書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아뢰기를, ‘『삼강행실도』는 벌써 간행이 되었으나 오륜五倫 가운데 장유長幼·붕우朋友 두 가지 일이 따로 간행된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신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적에 『이륜행실도』를 찬집하면서 형제의 유에다 친척 조항을 붙이고 붕우의 유에다 사생師生 조항을 붙여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간행하여 반포해서 온 도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르는 자가 없게 하였습니다. 신은 이 《이륜행실도》를 많이 간행하여 널리 반포하는 것이 매우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이렇게 간행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는 이후 꾸준히 출판되었는데,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 등 전란을 겪은 후의 기록을 보면 백성들의 풍속이 날로 투박해져 아들은 어버이에게 효도할 줄을 모르고, 아우는 형을 공경할 줄을 모르게 되었다고 하면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등을 인출하게 하였다. 정조대에 와서는 혜경궁 홍씨의 주갑을 기념하면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 같은 책도 정치를 돕고 세상을 권면하는 도구로서 《소학小學》과 함께 버릴 수 없는 책이므로, 하나로 정리하여 《오륜행실도》라고 명명하였다.” 라고 하여 기존의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쳐 오륜행실도를 새롭게 편찬하였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은 “《삼강행실》과 《이륜행실》 두 서적을 가져다가 합하여 바로잡고 증정證訂하고 언해諺解하여 이름하기를 《오륜행실》이라 하였다. 그리고 주자소에 명하여 활자로 인쇄해서 널리 반포하게 함으로써 《향례鄕禮》의 우익羽翼이 되게 하였다. 그런데 효자류孝子類에서 곽거郭巨 한 조목을 특명으로 삭제하게 하였는데, 이는 대개 주자朱子가 문인에게 경계하여 등유鄧攸의 일을 《소학》에 상세히 기록하지 못하게 한 유의遺意를 본받은 것이라고 한다.” 라고 하여 기존의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본하여 만들면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 조목은 삭제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등은 조선시대를 거치며 각 시대 상황에 맞는 내용을 선정하여 간행된 것을 알 수 있으며, 통치 철학이자 백성들을 교화할 수단으로써 국가사업으로 간행되었다.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 1850-1941)이 그린 <오륜행실도>는 10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이다. 각 화면의 내용을 출처별로 나눠보면 『삼강행실도』 중 1장면(4폭上), 『오륜행실도』 중 11장면(1폭上, 3폭上, 4폭下, 5폭上, 5폭下, 6폭上, 7폭上, 8폭下, 9폭下, 10폭上, 10폭下), 『여사서女四書』 중 4장면(2폭上, 2폭下, 8폭上, 9폭上), 『여소학女小學』 중 1장면(6폭下) 등 여러 행실도와 윤리서 등의 내용이 들어있으며, 이외에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장면(1폭下, 7폭下)들도 그려져 있다. 주제별로 보면 충신 4장면(1폭上, 1폭下, 2폭上, 2폭下), 효자 9장면(3폭上, 3폭下, 4폭上, 5폭上, 5폭下, 6폭下, 7폭上, 8폭上, 8폭下), 열녀 6장면(4폭下, 6폭上, 7폭下, 9폭上, 9폭下, 10폭上), 형제 1장면(10폭下)으로 효자에 대한 장면이 가장 많이 그려졌다. 1폭의 상단부터 살펴보면 ‘죽교입근도竹橋立慬圖’라는 화제를 달고 『오륜행실도』의 ‘몽주운명夢周殞命’의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는 채용신이 그린 <정몽주순절도鄭夢周殉節圖>가 남아있어 비교되는데, 화면의 구성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성 또한 『오륜행실도』의 ‘몽주운명’을 보고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1폭 하단에는 ‘민충정혈죽도閔忠貞血竹圖’라는 화제를 달고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의 자결과 그 자리에 혈죽이 피어났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는 1906년 7월 15일 서울 소재 사진관 국전진菊田眞에서 제작한 혈죽 사진이 참고된다. 민영환의 모습과 민영환이 을사조약(乙巳勒約, 1905) 후 일본에 항거하여 순절할 때 입은 옷을 둔 곳에서 대나무가 자라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부착되어있다. 2폭 상단은 ‘갑국윤융부치기부불사蓋國淪戎婦恥其夫不死’라는 화제를 달았는데, 이는 『여사서』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요약해보면 융戎이 갑국[蓋國]을 멸한 후 갑국의 장수 구자丘子가 스스로 자결하지 못하자 그의 아내가 먼저 스스로 자결하였고, 이를 들은 융의 임금이 갑국을 보존하였다는 내용이다. 2폭 하단의 화제는 ‘릉모주사이검복陵母尌使而劎伏’으로 초나라와 한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기의 이야기로 한나라를 섬기던 왕릉王陵의 어머니를 초나라 왕 항우項羽가 가두고 겁박하자 아들을 위해 스스로 자결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3폭 상단의 화제는 ‘요전우순堯傳于舜’으로 요왕이 우순에게 나라를 전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단은 ‘왕상도리王祥祷鯉’로 왕상이 겨울에 부모님을 위해 잉어를 구한 이야기를 그렸다. 4폭의 상단과 하단은 각각 ‘곽거득금郭巨得金’과 ‘진씨수절陳氏守節’로 곽거가 어머니의 식사를 탐내는 아들을 매장하려 했던 이야기와 남편이 전장에서 죽자 평생 시어머니를 모신 진씨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상단의 곽거득금은 기존 『삼강행실도』 한문본에 실린 이야기로 『오륜행실도』에서는 삭제되었는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조실록正祖實錄』에서는 주자가 등유鄧攸의 일을 경계하였듯이 곽거 조목을 삭제한다고 적고 있다. 등유의 이야기는 전란 때 자신의 아들을 버리고 아우의 아들을 보전한 일화로 등유와 곽거 조목 등을 삭제한 것은 시대에 맞지 않게 된 내용을 제외한 것으로 생각된다. 5폭의 상단은 ‘자로부미子路負米’이며 하단의 경우 화제는 없으나 내용상 ‘민손단의閔損單衣’를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자로부미는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쌀을 운반하여 부모를 섬겼다는 이야기이며, 민손단의는 마찬가지로 공자의 제자인 민손의 이야기로 배다른 아들을 미워한 어머니를 민손의 아버지가 알고 내쫓으려 하자 민손이 어질게 대처하여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6폭 상하단의 화제는 각각 ‘유씨대정팽이활부劉氏代鼎烹而活夫’와 노래자老萊子의 고사를 다루고 있다. 유씨대정팽이활부는 『오륜행실도』에서는 ‘취가취팽翠哥就烹’으로 나타나는 고사로 여기서는 『여사서』에 기록된 제목을 따르고 있다. 유씨대정팽이활부의 이야기는 원나라 때 도적이 중의仲義라는 사람을 삶아 먹으려하자 그의 아내가 남편 대신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노래자의 고사는 나이 70세의 노래자가 늙은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해 아이처럼 놀며 부모님을 즐겁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7폭의 상단은 ‘맹종읍죽孟宗泣竹’이며 하단은 ‘청주한씨열녀도清州韓氏烈女圖’이다. 맹종읍죽의 경우 맹종이 부모님을 위해 겨울에 대숲에서 죽순을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청주한씨열녀도의 경우 화면 곳곳에 지명이 등장하는데 열녀가烈女家가 있는 ‘호두리虎頭里’와 화면 하단에 흐르는 ‘임실任實 운암강雲岩江’ 등이 있다. 그러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승호와 청주한씨 등은 김제 금구면과 금산면 등에 전해지는 효자와 열녀의 이야기인 것으로 생각된다. 김제 금구면 하신리 상송부락 <청주한씨열행비>는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 김해金海 김국길金國吉의 아내로 효성이 지극했는데, 남편이 병들자 백방구약하고 병구완에 극진했는데 죽음에 초종범절初終凡節을 일준제례하고 3년 후 제사가 끝나자 투신자결하여 사람들이 1925년 비를 세웠다고 한다. 8폭의 상단과 하단은 ‘당씨유고唐氏乳姑’와 ‘양향액호陽香搤虎’이다. 당씨유고는 당씨가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자 그녀의 손자인 최산남崔山南이 후에 절도사가 되어 조모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양향액호는 양향이라는 딸이 아버지에게 범이 달려들자 범의 목을 졸라 아버지를 살렸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9폭은 ‘반묘원구구도潘妙圓救舅圖’와 ‘고행절부高行節婦’를 그렸다. 반묘원구구도는 원나라 때 도적에게 겁박당한 여인이 남편을 따라 불에 뛰어들어 자결한 이야기이며, 고행절부는 『오륜행실도』에서는 고행할비高行割鼻로 수록된 이야기로 남편을 잃은 여인을 고관들과 왕이 취하려 하자 스스로 코를 베어 절개를 지켰다는 이야기이다. 10폭에는 ‘최씨감난전이전절崔氏甘亂箭以全節’과 ‘진씨회반陳氏會飯’이 그려져 있다. 최씨감난전이전절은 『여사서』의 제목을 따른 것으로 『오륜행실도』에서는 최씨견사崔氏見射로 수록되어 있다. 최씨견사는 도적들이 겁박하자 저항하여 도적이 활로 쏘아 죽였다는 이야기이며, 진씨회반은 『오륜행실도』의 진씨군식陳氏羣食으로 진씨집안이 화목하여 식사를 할 때는 개들도 모여서 먹었다는 이야기로 유일한 형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석지 채용신의 <오륜행실도>는 10폭 20장면으로 구성된 병풍으로 화면을 상하 2단으로 나눠 이중 윤곽선의 방형으로 구획하였다. 각 화면에는 화제를 적고 그 옆으로 한글로 화면의 내용을 적었다. 내용의 구성을 보면 조선시대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세종대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 내내 간행되었던 윤리서들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여사서』, 『여소학』 등이며,이 외에 민영환의 일화와 청주한씨의 일화 등 당시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함께 담고 있다. 화면의 구성과 도상으로 보아 대부분 『오륜행실도』를 따르고 있으면서도, 일부 변형을 가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할만한 작품으로는 석지 채용신이 그린 <정몽주순절도>, <춘우정투강순절도春雨亭投江殉節圖> 등이 있다. 두 작품 모두 화면 곳곳에 지명과 건물, 인물들을 적어 그림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는 <오륜행실도> 중 청주한씨열녀도清州韓氏烈女圖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는 청주한씨열녀도의 경우 기존 행실도류를 참고한 것이 아닌 당대의 사건을 그린 것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석지 채용신은 1871년 22세에 <이하응상李昰應像>을 그리며 그 실력이 널리 알려졌다. 이후 188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했는데, 여러 기록을 통해 보면 그는 당대에도 그림 실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으며 이에 못지 않게 관직 생활도 칭송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채용신은 1906년 정산군수를 끝으로 낙향하였는데, 이는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1870-1928)과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1858-1916) 등이 주도한 탄핵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후에는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을 시작으로 임병찬(林炳瓚, 1851-1916), 윤항식(尹恒植, ?-?), 김직술(金直述, 1850-1920), 김영상(金永相, 1836-1910), 전우(田愚, 1841-1922), 황현(黃玹, 1855-1910) 등 수 많은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1923년에는 정읍 신태인 6리로 거처를 옮겨 ‘채석강도화소蔡石江圖畵所’를 세우고 수 많은 초상화를 제작하였으며 1941년 별세하였다. <오륜행실도>의 1폭 상하단에 등장하는 죽교입근도와 민충정혈죽도는 이러한 채용신의 생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죽음을 불사한 충신들로 채용신이 그린 우국지사들과 궤를 같이한다고 보여진다. 이처럼 석지 채용신의 <오륜행실도>는 조선시대 간행된 여러 행실도류를 종합적으로 계승하면서 항일에 앞장선 지사들과 당대의 사건들을 첨가하여 제작한 근대기의 작품으로 다각도적 접근이 필요한 작품으로 사료된다. [참고문헌] 『三綱行實圖』 『女四書』 『女小學』 『五倫行實圖』 『二倫行實圖』 『朝鮮王朝實錄』 국립전주박물관, 『석지 채용신 초상화』, 2020. 미술관 솔, 『채용신_역사의 흐름』, 2022. [참고도판] 1. 석지 채용신, <정몽주순절도>, 20세기 초, 101×36.5㎝, 비단에 채색. 2. 석지 채용신, <춘우정투강순절도>, 1922년, 74.5×50㎝, 마에 채색, 개인소장. 3. <혈죽사진>, 1906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구입 10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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