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연간 <권대운기로연회도>와 남인 세력
드라마 ‘장희빈’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숙종연간(肅宗年間, 1674-1720)에는 서인西人과 남인南人 세력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세 차례의 환국換局이 발생했습니다. 남인세력은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실각한 이후, 다시 남인계열인 후궁 장희빈(張禧嬪, 1659-1701)의 소생이 세자로 책봉되는 과정에서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을 통해 재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권대운기로연회도>로 남인의 수장이었던 권대운(權大運, 1612-1699)의 남산 사가私家에서 행해진 연회를 기록한 작품이자, 숙종연간 당시 정치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권대운기로연회도>, 비단에 색, 155×488㎝, 서울대학교 박물관
그림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총 8폭의 병풍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마치 산이 옆으로 누운 듯한 기이한 형태의 절벽과 이에 못지않게 중국 절강성 태호太湖에서나 볼법한 괴석이나 파초가 어우러진 배경 한가운데 연회를 즐기고 있습니다. 다양한 나무는 제각기 거대한 몸통을 비틀며 시선을 사로잡고, 원경의 굽이진 언덕 위에는 학이 노닙니다. 연회 참석자들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도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전체적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화면 속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볼까요? 제2폭에는 마부와 시종이, 제3폭에는 교자꾼들이 양반 뒷담화라도 하는지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4~6폭의 중심에는 각상各床을 받은 9명의 연회 참석자들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고운 분홍색 관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참석자들은 모두 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권대운기로연회도> 제4, 5폭 세부
이들이 누구인지는 서문과 좌목座目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건물의 단 위로는 영의정領議政이자 연회의 주최자로 보이는 권대운과 함께 좌의정 목내선(睦來善, 1617-1704), 좌참찬 이관징(李觀徵, 1618-1695), 공조판서 오정위(吳挺緯, 1616-1692)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권대운 뒤에는 숙종에게 하사받은 구장鳩杖을 들고 있는 시동侍童이 보입니다. 여기서 구장이란, 임금이 70세 이상의 공신이나 원로대신에게 하사했던 것입니다. 대신들의 좌우로는 아들 및 손자인 이옥(李沃, 1641-1698), 권규(權珪, 1648-1723), 오시만(吳始萬, 1647-1700), 목임일(睦林一, 1646-?), 권중경(權重經, 1658-1728)이 참석하였던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 <권대운기로연회도> 제4폭 주요 인물 표현 세부,
왼쪽부터 차례로 이관징, 목내선, 권대운, 오정위
연회는 언제 개최되었던 것일까요? 작품 속 9인의 등장인물들, 특히 오랜 친분이 있던 원로대신인 권대운 등 4인이 모두 복권復權되었다는 서문 속 표현에서 그림이 1689년 이후 그려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최근의 연구에서 좌목에 기록된 관직과 실록 속 기록을 비교하여 구체적으로 제작시기가 1690년임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1690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들이 연회를 개최하고 그림까지 남기게 되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해는 다시 정권을 잡은 남인들에게 중요한 한 해였습니다. 장희빈의 소생이자 훗날 제20대 왕인 경종(景宗, 재위 1720-1724)이 왕세자로 책봉되고,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된 해였습니다. 권대운 측면에 있는 왕이 하사한 구장은 권대운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지물로, 그림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본 그림은 기사환국 이후 남인의 중심 세력이 모여 남인세력이 가장 정점에 서 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기록화의 성격을 가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김경인, 「<權大運耆老宴會圖>를 통해 본 南人의 復興과 衰落 - 서울대학교 소장본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비교를 바탕으로 -」, 『박물관학보』35, 한국박물관학회, 2018.
김지선, 「《권대운기로연회도》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학전공 석사학위논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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