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에서는 국가의 권위와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고, 국가 통치에 활용하기 위하여 다양한 회화를 제작하였습니다. 특히 궁궐 전각 내부를 장식하기 위하여 도화서圖畫署의 화원畫員들은 여러 궁중 장식화를 제작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여기에서 소개할 일월오봉도입니다.
五雲多處是蓬萊 오색구름 많은 곳 바로 봉래산이니
寶座高臨日月開 보좌에 높이 임함에 일월이 열리네
長祝君王千歲壽 길이 축원하노니 군왕께서 천세를 누리시어
南山北斗共崔嵬 남산과 북두성北斗星과 함께 우뚝하소서
- 『매산선생문집梅山先生文集』 권3 望京 -
위의 문헌 『매산선생문집梅山先生文集』(1866)의 내용은 곧 일월오봉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색구름은 본래 신선이 머무는 곳에 어리는 다섯 가지 빛깔의 상서로운 구름으로 흔히 임금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봉래산은 동해東海 가운데 있다는 선경仙境으로 또한 임금이 있는 도성의 대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보좌는 임금이 앉아 조회를 받고 집무하는 자리로 어좌御座 또는 옥좌玉座라고도 칭하는데, 조선조의 경우 보좌 뒤에 다섯 개의 봉우리에 해와 달이 떠있는 일월오봉도 병풍을 놓아 신성과 위엄을 갖추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일월오봉도의 양쪽 상단에 그려진 해와 달은 각각 음양陰陽을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는 오행五行을 상징합니다. 더불어 하늘과 땅, 물이 모두 나타나니 그것은 곧 우주를 의미하며, 우주의 생성과 변화, 운행의 체계인 음양오행을 대변하는 상징물들을 주관하는 이 그림의 주인공인 국왕은 곧 우주의 주재자 아니면 우주의 주재자를 대신하는 존재와 같은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었습니다.
즉 일월오봉도는 왕권 상징의 매개체이며, 음양오행사상에 입각한 일월오봉도는 그 앞에 임금이 앉으므로써,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삼재三才, 즉 우주를 이루는 세 바탕을 이룬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삼재를 관통하는 대우주의 원리(三)가 ‘사람’이라는 소우주의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고 결국, (三+│=王) 일월오봉도는 왕이 앉으므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미완성의 그림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1)
이러한 일월오봉도는 궁궐의 어좌 또는 왕이 공식적으로 임어臨御하는 자리 주변을 장엄하는 용도였을 뿐만 아니라 궁궐의 병풍, 문짝의 장식 그림으로 사용되었습니다(참고도판 1). 그리고 국상시에 빈전殯殿과 혼전魂殿, 왕의 어진(초상화)를 그리고 봉안하는 선원전禪源詮 등 왕실 의식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참고도판 1] 일제강점기 경복궁 근정전 내부 일월오봉도 (출처: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도상의 연원이나 제작의 이유에 대해 전해오는 기록이라든지 언제부터 사용되어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기록상으로 처음 발견되는 것은 1637년 승정원일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오봉도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이 바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처럼 궁중에서 폭넓게 오봉병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에 이르면 민간에서도 발견되어 무신도巫神圖 등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월오봉도를 포함한 궁중에서 사용한 작품들은 그려진 시기를 추측할 뿐 정확한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이아트옥션 제33회 메이저 경매에 출품된 작품(LOT. 34)의 경우 마지막 여섯 번째 폭 하단에 중국의 연호를 사용한 간기刊記가 확인되었습니다(참고도판 2). 작품 후면에 ‘함풍7년중사咸豐七年重寫’라고 쓰여 있는데, 이로서 이 작품이 그려진 시기가 1857년임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고,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된 매우 귀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참고도판 2.] 작품 후면에 기록된 간기刊記
1) 오주석,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솔,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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