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과 프랑스가 함께 빚어낸 예술의 길
-서울공예박물관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 기념전 <더 하이브리드> 전시리뷰
지금 서울공예박물관에서는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더 하이브리드》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1886년 수교 이후 프랑스와 문화 교류를 통해 한국 전통 공예가 근대화, 세계화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서 서로의 문화가 융합되어 탄생한 공예품의 문화적 의미를 조명한다.

<말총모자와 함>, 1909년 이전, 말총, 옻칠, 종이, 대나무, 독일 로텐바움박물관.
전시장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말총모자>이다. 서양식 보울러 모자 형태를 띠고 있지만, 우리나라 전통 갓의 요소가 보인다. 갓의 주재료인 말총으로 제작하였으며, 모자 안쪽에는 한지를 오려 붙인 ‘정꽃’ 장식, 몸체와 챙이 만나는 지점에는 ‘은각’을 덧댔다. 1884년 미국의 수학자‧천문학자인 퍼시벌 로엘은 이 모자를 고종에게 선물 받은 뒤 전통과 새로운 문화가 어우러진 하이브리드의 산물이라 칭했다고 한다. 이 모자를 보니 서양에서 사람들이 처음 만날 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갓을 닮은 모자를 벗고 관람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근대기 사람의 모습이 겹쳐지며 전시의 시작을 알리는데 어울리는 작품이다.

<자수십장생도>, 1905년 이전, 비단에 자수, 개인소장, 제45회 마이아트옥션 출품작.
주요작품을 살펴보면, 먼저 1905년 대한제국에 부임한 미국 총영사 에드윈 모건(Edwin V. Morgan, 1865-1934)의 유품으로 전해 내려온 <자수십장생도>가 있다. 화면에는 소나무와 오색구름 사이로 뜬 해, 대나무, 괴석, 한 쌍의 학과 영지버섯을 문 사슴, 영기를 내뿜는 거북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무병장수와 불로장생을 상징하여 십장생十長生의 도상으로 궁중회화에 자주 등장하며, 치밀하게 수 놓은 궁중 자수의 품격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전시에는 동양과 서양 문화가 혼합된 지점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그 가운데 유럽 최초로 우리 유물을 선보인 파리 세계박람회(1889)와 처음으로 한국 상설전시실을 개관한 프랑스 기메박물관(1893)에 실제 출품되었던 작품사진이 남아있어 눈길을 끌었다.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공예품.

<호리병 모양 서랍장>, 19세기, 나무, 칠. 마키에, 금속,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이 작품은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호리병 모양 서랍장>이다. 앞면에는 옻칠과 금가루를 이용한 마키에 기법으로 후지산과 일본식 다리, 국화를 그려 이국적인 느낌이다. 호리병 모양의 자물쇠와 경첩, 박쥐형 다리는 조선 시대 가구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형태, 장식, 색채 등 유례가 드문 가구로 사용자의 취향과 용도에 맞추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1889년 파리 세계박람회는 프랑스 학자 샤를르 바라와 외교관 플랑시 공사가 조선에 체류하며 수집한 유물을 전시하였고, 출품작 대부분이 프랑스 기메박물관으로 이관되어 이를 토대로 1893년 최초의 한국 상설전시실이 개관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농 전면에 화각을 입힌 <화각농>이다. 사각으로 구획하여 봉황과 학, 용과 잉어, 거북과 기린, 해태와 코끼리 등 길상의 동물들을 자유로운 민화적 필치로 다채롭게 가득 펼쳐 보였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최초의 한국 전시실 개관 당시의 모습(1893).

<화각농>, 19세기, 나무, 화각, 금속,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화각농> 세부 표현.
1897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공식 참가하게 되는데, 대대적인 주목을 받진 못하였지만, 전통 틀을 넘어서 변화의 시도를 보인 의미있는 사례가 되었다.



프랑스 외교관 콜랭 드 플랑시는 13년간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활동하며 모은 2,500여점에 달하는 방대한 문화유산을 프랑스 기메박물관 외에도 주요 국립기관에 한국 문화유산을 기증하였는데, 특히 세브르도자박물관에 기증한 300점에 달하는 도자기는 프랑스 도자공예의 발전과 한국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한 고려청자 병, 12-13세기, 국립세브르도자박물관.
세브르 제작소는 고려청자를 연구하여 1890년대부터 우리 도자 원형에 최신 기술이었던 플람베 유약을 적용하여 서양 근대 화학기술을 결합한 시도를 하였다. 단순화한 우리 도자의 외형 위에 다채로운 유약을 입혀 세브르 고유의 장식미를 더한 새로운 양식의 도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더구나 그 작품명이 <서울 화병>, <부산 화병>, <울산 화병> 등 우리 땅의 이름이 들어갔으니 우리 도자가 세브르 제작소 도공들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알게 한다.

<울산 화병>, 1897, 자기, 국립세브르도자박물관.

<울산 화병>, 1899, 자기, 도안가-앙리 루이 로랑 올리히, 국립세브르도자박물관.
이 외에도 황실에서 외국과 주고받은 외교 선물,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주 문양인 이화문李花紋이 다양하게 사용된 예, 거주하는 공간이 서양화되며 달라진 집의 구조로 실생활에서 쓰임과 형태가 변화한 공예의 모습, 근현대 도안가, 공예가들의 작품까지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전시이다. 쏟아지는 서양 문화 속에서 우리 전통을 잘 융합하여 또 다른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게 하고, 지금의 한국 예술로 이어오게 만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전한다.

<박기준 대례복>, 1906-1910, 모직에 자수, 서울공예박물관.

<삼단 선반 모서리장>, 20세기 초, 참나무, 서울역사박물관
글. 마이아트옥션 학예사 송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