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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6-03-27 11:16

옛 그림 속 매화의 향기

[칼럼] 옛 그림 속 매화의 향기

매화는 늘 봄보다 일찍 찾아온다. 매년 3월이면 전남 광양 매화마을에서는 섬진강 하류 백운산 자락에 새하얀 매화로 장관을 이루는 매화 축제가 한창이다.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은 국내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핀다는 이곳에 매화를 만끽하러 방문한다. 매화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듯하다. 매화는 예로부터 그림, 도자기, 생활공예품 등에 자주 쓰였으며, 옛 그림에서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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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매화마을 풍경(사진: 광양시)

​​매화는 조선 회화에서 난초·국화·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불리며, 겨울의 긴 추위를 견딘 꽃으로 선비의 절개와 고결함을 상징하는 대표적 소재였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은 조선후기 시서화 삼절로 불린 문인화가이며, 선비의 품격을 강조한 사군자 그림을 다수 남겼다. 본 작품에서 매화는 아래에서 시작하는 다른 세 작품과 달리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오는 대각선 구도를 보인다. 담묵으로 간결한 필선과 여백이 특징이다.​

제59회 마이아트옥션 메이저경매 출품작 Lot.028

표암 강세황, <사군자>, 1784, 종이에 수묵, 각 27×42㎝

표암 강세황, <사군자> 중 매화

다음 작품은 고람 전기(古藍 田琦, 1825-1854)의 매화초옥도梅花書屋圖이다. 매화가 가득 핀 깊은 산속의 서옥이 자리한 그림은 은거하는 선비의 삶을 보여주며 송대 임포(林逋, 967-1028) 고사에 따른 그림이다. 임포는 절강성 항주 서호의 고산에 초옥을 지어 매화를 심어 감상하고 자연을 이상향으로 삼으며 은거하는 삶을 산 인물이다. 화면에는 눈송이처럼 흰 매화가 흐드러지게 가득 피어있는 경치를 잘 보여준다. 오른쪽 아래 ‘亦梅仁兄草屋笛中’는 ‘역매 형이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 라는 의미로 초록색 옷을 입은 초옥의 주인은 역매 오창석(亦梅 吳慶錫, 1831-1879)을, 다리를 건너는 붉은 옷을 입은 인물은 고람 전기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흰 눈과 초록색과 붉은색의 조화로운 색채대비는 산뜻한 기운을 주며 오창석을 찾아가는 전기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며 두 사람의 따스한 관계도 느껴진다.

고람 전기, <매화초옥도>, 조선 19세기 중엽, 종이에 엷은 색, 32.4×36.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봉 조희룡은(又峰 趙熙龍, 1789-1866)은 매화를 사랑한 대표적인 화가이며 많은 매화 그림을 남겼다. 조희룡의 『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을 보면,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는 벼루,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이라는 먹을 사용했으며, 매화에 관한 시를 지어 큰 소리로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자신이 그린 매화 병풍을 방 안에 두르고 자신의 거처에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고 이름 짓고 자신의 호를 매수(梅叟, 매화 노인)라고 하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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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회 마이아트옥션 메이저경매 출품작 Lot.037

우봉 조희룡, 매화, 종이에 수묵담채, 115×43.2㎝

 

‘…余多用胭脂點花, 房櫳斑駁, 故名吾居曰絳雪堂’

연지를 많이 써서 꽃을 그리므로, 방의 창문이 알록달록하기 때문에, 나의 집을 강설당이라 이름한다

제56회 마이아트옥션 메이저경매 출품작인 매화 작품을 보면 홍매를 즐겨 그려 붉은 연지색을 많이 썼다는 매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강설당絳雪堂에 관한 화제가 전한다. ‘…余多用胭脂點花, 房櫳斑駁, 故名吾居曰絳雪堂’은 연지臙脂를 많이 써서 꽃을 그리므로 방의 창문이 알록달록하기 때문에 나의 집을 강설당絳雪堂이라 이름하였다는 내용이다. 본 작품을 보면 화면 가득 세로로 굽이쳐 뻗어 자라는 가지와 화려하게 핀 홍매화는 시각적 감흥이 뛰어나다. ​

이처럼 옛 문인과 화가들은 매화를 마주할 때 긴 겨울을 지나 가장 먼저 피어나는 고고한 정신을 만나며 화폭에 담았다. 오래된 그림 속에서도, 오늘날의 자연 속에서도 매화의 향기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글. 마이아트옥션 학예사 송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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