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4-12-05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본관 B1
연락처
02-735-1110 / 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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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숙종/ 오수엽
숙종대왕내사시첩 · 공천묘지 상세보기
종이에 먹
43.7×26㎝ 외
추정가
KRW  
10,000,000 - 5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曠世殊恩 광세수은 (세상에서 드문 아주 특별한 은혜) 奎章寶墨 규장보묵 (임금께서 짓고 쓰신 보배로운 글씨) 江原監司吳道一之才 廻萬里之行 旋按關東之節 盖欲鎭紛紛層生之論不得已也 言念世道良可慨嘆 偶以一絶言志 강원 감사 오도일은 재주가 있어서 만 리의 사행使行을 하고 돌아와 곧장 관동으로 부절(符節,강사의 인끈)을 가지고 나갔다. 이는 아마도 무수하게 일어나는 논란들을 억누르려 하였으나 어찌할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도世道를 생각함에 이는 진실로 개탄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숙종)는 우연히 절구絶句 한 수를 이렇게 지었다. 去年塞北幾瞻雲 지난해는 북쪽 변방에서 구름 몇 번이나 보았을까 今日關東倍戀君 이제는 관동으로 나가 임금 그리는 정 더해졌겠네 元來一片丹衷炳 원래부터 그 일편단심 밝게 빛나고 있었을 테이니 末路??豈足云 세상 사람들의 험담쯤이야 어찌 논할 필요 있으랴. 이는 서파 오도일(西坡 吳道一, 1645-1703)이 숙종 21년(1695, 51세) 정월正月에 별감別監을 본가로 보내 하사받은 어제 어필시이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같은 해 2월에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부임했다가 9월에 조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추탄 오윤겸楸灘 吳允謙의 손자로 숙종 20 년 (1694 , 50세) 6월에 진주陳奏 겸 주청부사奏請副使로 중국에 다녀온 직후 12월에 부제학(副提學, 정3품 직)을 거쳐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송벽당 이정신(松蘗堂 李正臣, 1660-1727)이 숙종 어제어필 시판을 경종 4년(1724)에 감영監營 관아官衙에 걸면서 쓴 발문跋文이 탁본에 들어 있다. 聖人之言 炳若丹靑 성인의 말씀은 그림처럼 찬란하다. 이는 양웅(揚雄, B.C. 53 - B.C. 18)의 법언法言에, 혹자가 “성인의 말씀은 그림처럼 찬란하다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聖人之言은 炳若丹靑이라한데 有諸잇까?”라고 한 것에서 인용한 것으로 숙종 대왕이 서파 오도일에게 어제 어필시를 내린 것을 기려서 쓴 휘호이다. 子孫藏之 永以爲寶 자손들은 이를 잘 갈무리해 길이 보물로 삼을지어다. 仁宗皇帝 飛白御書記 인종황제 비백어서기 소식(蘇軾, 1037-1101) 抱烏號之弓이 不若藏此筆이요 保曲阜之履가 不若傳此書며 考追?以論音聲이 不若推點?以究觀其所用之意요 存昌?以追嗜好가 不若因褒貶以想見其所與之人이라. 오호烏號라는 활1)을 안고 있는 것이 이 필적을 보관하는 것만 못하고, 곡부曲阜의 신발을 보존하는 것이 이 글을 전하는 것만 못하고, 추려追?를 고찰하여 음악을 논하는 것이 한 점 한 획을 미루어서 그 쓰신 바의 뜻을 자세히 연구해보는 것만 못하고, 창포 김치를 보존하여 선왕의 기호嗜好를 추념하는 것이 포폄褒貶하신 일을 인해서 그 친애하신 사람을 상상해보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이는 소동파가 쓴 인종황제仁宗皇帝 비백어서기飛白御書記 일부를 후대에 휘호해 둔 것이다.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 묘비문墓碑文 탁본拓本 公阡墓志 공천묘지 오도일의 3남인 영유현감을 지낸 오수엽(吳遂燁, 1689-?)이 비문을 짓고 비의 전면全面 대자大字까지 함께 쓴 것이다. 음기는 둘째 형 오수욱吳遂郁의 아들인 오명부吳命溥에게 시켜서 쓰게 했다. 오수엽은 경종 3년(1723) 진사시에 장원壯元으로 합격했다. 朝鮮國 兵曹判書 兩館 大提學 贈 左贊成 西坡 吳公 道一之墓 조선국 병조판서 양관 대제학 증 좌찬성 서파 오공 도일지묘 貞敬夫人 ?壤趙氏 ?右 정경부인 풍양조씨 부우 貞敬夫人 延日鄭氏 ?左 정경부인 연일정씨 부좌 현종 18년(1757) 8월에 아들인 오수엽이 이 비를 세웠다. 이 탁본첩은 비를 세운 직후에 바로 탁을 떠서 첩으로 만든 원탁첩元拓帖이다. 이 비문은 오수엽의 문집이 남아 있지 않아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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