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스물 두 마리 다양한 색의 말들이 수려한 산수를 배경으로 자유롭게 뛰놀고 마부馬夫가 이들을 목욕시켜주는 등 평화로운 목장牧場 풍경이 펼쳐진 연폭連幅 8폭병풍이다. 이 병풍은 현전하는 조선시대 목마도牧馬圖로 최대 규모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말들을 보면, 목욕하는 ‘세마洗馬, 혹은 욕마浴馬’에서 시작하여 배를 드러내고 뒹구는 ‘곤마滾馬,’ 힘차게 엉키어선 여러 마리 말들의 조합, 달리기를 하는 ‘분마奔馬’ 외에 물을 마시거나 멀리 바라보는 모습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부의 조마調馬는 극히 제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 대개의 말들은 안장과 장식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상태로 보인다. 그림 속 인물을 보면, 마부가 8명 등장하는데 모두 조건(皂巾, 검은 두건)을 쓴 모습으로 『고씨화보』 속 조옹(趙雍, 1289-1360)이 그린 마부를 연상케 한다. 제2폭의 누각에는 느긋하게 목장을 내려보는 남성과 그 곁에 앉은 여성, 이들 뒤로 차 주전자를 안고 동자가 서 있는데, 남성은 복건에 평상복을 입었으며 여성은 솟은 듯 높은 고계高髻 머리로 단장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의 머리 모습은 제7폭 상단의 담벼락 뒤에서 목장 안을 엿보고 있는 두 여성과 그 앞의 바위 위에 걸터 앉아 마주 보는 두 인물들에게서도 동일하다. 그림 속 건물 표현을 살피면, 제2폭 누각의 화려한 채색이 조선후기 왕실에서 제작되던 병풍 속 상상의 건물들을 연상케 한다. 주사안료를 듬뿍 베풀어 그린 주벽에 금니의 세밀한 문양의 장식이 가해진 기둥이나 고운 입자의 석록을 사 용한 옥색 난간의 표현이 특히 그러하다. 제7폭의 두 여성 뒤로는 기와지붕이 즐비하고 높이 솟은 누각이 있다. 이러한 건축물과 여성의 머리 모양으로 미루어 볼 때, 이 그림이 표현하는 시기는 대략 중국 고대의 번영기 당唐 즈음임을 알려준다.
더욱 주목할 점은 <목마도 8폭병풍>에 그려진 말이 18세기에 조선 왕실에서 제작된 ‘팔준도’의 마색馬色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의 문인들은 17세기 말부터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팔준도>를 보고 시를 부쳤을 정도로 중국 명청대에서 유입 되는 말그림들을 감상하고 있었으며, 숙종(肅宗, 재위 1674-1720)은 태조(太祖, 재위 1392-1408)가 전장을 누비며 함께 했던 명마 ‘팔준’를 다시 그리도록 하였다.
<목마도 8폭병풍>에서 유난히 크게 그려진 말들이 이 팔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양상은 다음과 같다. 제 4-5폭의 하단에 자리한 말들이 비교적 크게 그려져 있다. 제4폭 하단의 박락이 심한 탓에 말 몸의 반쯤만을 남기고 있는 두 마리 말을 보면, 앞에 있는 말이 자색 몸에 갈기가 검은 준마 ‘용등자龍騰紫’이고, 뒤에 선 말은 몸과 갈기가 모두 백색인 순백의 준마 ‘응상백凝霜白’이다. 이들 위로 달려들며 뒤를 돌아보는 말은 몸과 갈기가 푸른 준마 ‘유린청游麟靑’이다. 그 좌측에는 활기차게 엉키어 있는 네 마리 말들이 있다. 이들 중 가장 앞쪽에서 뒷발을 든 자색 말은 몸이 자색이며 갈기가 백색인 준마 ‘발전자發電赭’이며, 그 좌측의 흰말은 백색 몸에 백색 갈기와 꼬리를 가진 준마 ‘횡운골橫 雲鶻’이다. 그 뒤에는 갈기와 꼬리가 모두 검은 흑마 ‘추풍오追風烏’가 있다. 제 7폭에서 물을 먹는 말, 멀리서 달리는 두 마리의 말을 바라보며 선 말이 모두 황색 몸에 주둥이가 검은 준마 ‘사자황獅子黃’에 해당되며, 제3폭의 하단 물가에서 뒹구는 곤마는 검은 점이 표범과 같은 준마 ‘현표玄豹’이다. 이렇게 ‘팔준도’의 도상이 화면 전반에 선명하게 표현 되고 있는 점은 이 병풍이 적어도 숙종조의 팔준도 제작 이후의 작품일 것을 말해준다.
고연희(성균관대학교)
[수록처]
1. 富山美術館, 『李朝の繪畫: 坤月軒コレクション』, 1985, No.26.
2. 『幽玄齋選 韓國古書畵圖錄』, 1996, No.55.
3. 포스코미술관, 『The Hidden Chapter-오백 년 만에 돌아온 조선서화』,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