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씩 자란 파초芭蕉가 괴석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그 사이로 단정학丹頂鶴이 묘사되어 있다. 능숙한 필치의 먹선 위에 청록과 대자의 묽은 담채로 색을 베풀고 여백을 넓게 둔 구도로 전반적으로 차분한 정취를 주는 그림이다.
조선시대 파초 그림은 국왕 정조의 어필로 전하는 수묵 파초도로부터 현전하는 조선 후기 회화작품까지 두루 찾아볼 수 있다. 송나라 학자 장재(張載, 1020-1077)가 파초에 글을 썼다는 일화를 담아 파초는 장재를 주제로 그리는 고사인물도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이다. 또한 장재는 일찍이 파초의 새심新心이 말려 올라 새잎으로 자라나는 것을 관찰하며 도덕적 학문 수양을 결심한 시를 지어, “원하노니, 새심을 배워 새로운 덕을 키우고 새잎을 따라 새로운 지식을 일으키리라.(顧鶴新心養新德, 旋隨新葉起新知)”고 하였다.
관물(觀物, 자연물을 관찰하여 하늘의 이치를 터득함)을 통하여 배우고 수양하는 이 시구의 교훈적 의미는 조선 사회에서 널리 애호되었다. 이 그림은 문인적 아취를 추구하는 화풍으로 새잎을 펼치고 새심이 말려 올라오는 파초를 표현하였다. 더불어 담채淡彩로 처리된 파초 사이로 가운데 학 한 마리가 고개를 돌리고 서 있으니 사색적 정취가 느껴진다.
[수록처]
포스코미술관, 『美物玩賞』, 2021,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