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폭]
獨坐敬亭山 홀로 경정산에 앉아서
이백李白
相看兩不厭 바라봐도 실증 나지 않음은
只有敬亭山 다만 경정산이 있을 뿐일세.
衆鳥高飛盡 뭇 새들은 모두 높이 날아갔고
孤雲獨去閑 외로운 구름 혼자서 천천히 떠나간다.
[3폭]
江行無題 강가를 거닐다가 제목이 없이
전기錢起
斗轉月未落 북두성은 기울고 달은 아직 남았는데
舟行夜已深 배는 떠가고자 하나 밤은 이미 깊어졌네.
책가도冊架圖는 조선 18세기부터 궁중에서 민간까지 폭넓게 유행한 장르이다.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화원의 그림은 서양의 사면척량화법四面尺量畵法을 새로이 본받아 한 쪽 눈을 감고 보면 기물이 반듯하고 입체감이 있어 세속에서 책가화冊架畵라 불렀다고 전한다. 또한 반드시 채색을 하였고 상류층의 집안 중 이로 장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책가도의 형식은 당시 중국에서 그려진 다보각경多寶各景과 연관되어 있다. 다보각경은 서화, 기물, 진귀한 물건 등을 소장하여 진열한 장식용 가구인데 청 황실의 궁중화가로 활동한 서양 선교사 낭세녕(郞世寧, Giuseppe Castiglione, 1688-1766)의 전칭작이 유명하다. 조선 18세기부터 유행한 책가도 역시 영향을 받아 입체적이고 사실감 넘치는 그림으로 높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책거리의 경우 책가도고도 하지만 책가도의 가架는 나무로 만든 선반을 나타내기 때문에 본 작품은 책거리라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책거리의 거리는 복수형의 의미로 책과 당시 귀중한 기물을 함께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책거리는 여러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본 작품은 그중에서 서안식 책거리에 해당하며 가장 다양하고 자유로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책거리 속 진열된 문방구, 청동기, 도자 등은 대부분이 중국제로 조선 후기 연행사행燕行使行에 동행했던 역관들이 중국의 도자와 골동 등에 감탄해 많은 물건을 구입해 돌아왔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안경 등 서양의 물건도 보여 당시 골동과 수입품으로 유행했던 물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도자기로는 화분, 화병 등이 배치되었는데, 호리병 형태와 보자기를 묶은 포복문병包袱紋甁이 묘사된 것을 볼 수 있다. 포복문병은 조선 후기 궁중 회화에 나타나는 새로운 기물로 목이 길고 세장한 기형은 청대 가경(嘉慶, 1796-1820)년간의 양식과 유사하다고 한다. 보자기의 한자음이 복을 뜻하는 한자와 동음으로서, 보자기로 싸서 담는다는 의미가 복을 한가득 담다는 의미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길상의 의미를 함축한 보자기는 병甁과 결합하여 여러 형태의 보자기 장식 화병으로 제작되어 황제에게 바쳐졌고 민간에도 확산되었다. 책거리에 보이는 포복문병도 이와 같이 길상의 뜻이 표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포복문병 외에도 방가요병倣哥窯甁 등 다양한 기형의 화병이 폭마다 표현되었으며 골동품 외에도 동식물 역시 조화롭게 배치되었다. 본 작품에는 매화, 모란, 포도 등이 그려져 있는데, 나뭇가지가 꽂혀 있는 경우에는 새가 가지 가까이 날고 있거나 가지에 앉아 있는 형태로 표현되었으며 꽃에는 색색의 나비를 그려 넣었다.
본 작품은 다른 책거리에선 보기 드물게 사각형으로 구획하였으며 각 모서리마다 박쥐를 그려 넣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쥐는 길상의 의미를 담아 도자기, 목가구 등 다양한 공예품에 장식되었다.
[참고문헌]
1. 김은경, 「책거리에 등장하는 중국 도자의 함의」,『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 경기도박물관, 2012.
2. 방병선, 「이형록(李亨祿)의 책가문방도 (冊架文房圖) 팔곡병(八曲屛)에 나타난 중국도자」, 『강좌미술사』28,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