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양(李義養, 1768-?)의 자는 이신爾信, 호는 신원信園·운재雲齋·팔송관八松觀이며 본관은 안산安山으로 대대로 역관譯官을 지낸 집안에서 출생하였다. 집안의 내력과 달리 신원은 화원畵員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이한철(李漢喆, 1812-1893 이후) 역시 화원에 종사했다. 신원은 1805년 정순왕후빈전혼전도감貞純王后殯殿魂殿都監에 참여하였으며, 1811년 신미통신사행辛未通信使行, 1812년 동지사행冬至使行에 참여하였다.
일본 통신사행은 1636년부터 시행되어 총 12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1811년 신미통신사행은 대마도까지만 가는 일정으로 이루어진 사행으로 정사正使 김이교(金履喬, 1764-1832), 부사副使 이면구(李勉求, 1757-1818)를 포함하여 총 336명이 참여하였다. 신원은 통신사에서 화원으로 참여하였으며 대마도 관련 화폭 등을 제작하기도 하고 일본 문인들에게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였다. 신원 이의양의 현전하는 작품 대다수는 일본 방문 중에 그린 것으로 약 15점 정도가 현전하며, 주요 화제로는 산수도와 송호도 등을 잘 그렸다고 전한다.
본 출품작은 우측 상단에 ‘조선이신朝鮮爾信 신미신행辛未信行’이라고 쓰고 있어 1811년 신미통신사에서 그린 작품임을 추정할 수 있다. 채색 없이 수묵으로만 그린 작품으로 빠르고 간결한 필치로 전경의 암벽과 나무, 초옥 등을 그리고 원경에는 섬을 간략히 표현하고 있다. 암벽 위와 원경에 배치된 나무의 잎 등은 미점준을 사용하여 그렸으며 바위는 곡선을 사용하여 수직준보다는 부드럽고 안정감 있는 형태를 표현하였다. 전경의 좌측과 하단을 암산을 통해 채우고 있지만 우측과 원경을 넓게 비워 바다의 공간감을 표현한 그림으로 신원 이의양의 남종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조화영, 「조선후기 사행기록화 李義養(1768~ ) 筆 《信園寫生帖》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2021.
황은영, 「1811年 辛未通信使 隨行畵員 李義養에 대하여」, 『강원사학』23, 강원대학교 사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