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청화백자에는 산수문이 새로운 도상으로 등장한다. 산수는 인물과 마찬가지로 다른 화목畵目에 비하여 높은 회화적 기량이 요구되어 공예의 문양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사항이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14세기 원대 청화백자의 배경으로 시문되어 17세기 명말 청초에 이르러서야 청화백자의 주문양으로 비중이 높아졌고, 조선에서는 18세기 청화에서 처음 확인된다. 이는 문인 수요층이 확대되고 판화나 화보집이 발간되어 산수를 문양화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했음을 말해준다. 조선의 경우도 연행燕行을 통해 중국의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십죽재화보 十竹齋畵譜』와 같은 화보류와 함께 중국 청화가 수용되어, 이를 통해 조선 청화에도 산수문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청화백자에 나타난 산수는 중국의 소상瀟湘과 상강湘江이 만나는 동정호洞庭湖의 여덟 가지 경치를 펼친 소상팔경의 도상이 많고, ‘산시청람山市晴嵐’,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비롯한 소상팔경이 송宋나라 이래로 오랜 기간 정형화되는 과정을 거쳐 동아시아에 있어서 간명하고 특징적인 도상이 만들어졌다. 또한 널리 알려진 소상팔경시와 더불어 시화일률詩_一律의 이념과 지식인적인 교양을 드러내 줄 수 있는 화제_題로 애호되어 왔다.
본 백자병은 각병의 형태로 긴 목 아래 볼륨감 있는 동체부 양면에는 8곡의 이중 능화창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안에는 ‘장한귀강동張翰歸江東’과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시문되어 있다. 조선시대 각병은 17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유행하여 제작량이 늘어났다. 동체부의 능화창 양면에는 ‘壺中日月 醉裏乾坤’ 시구가 4자씩 쓰여 있다. ‘병 속에 해와 달이 비치고, 술 취한 가운데 세상의 이치를 알다.’라는 뜻으로 문인적인 문양과 기형적 요소에 걸맞은 시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한 면에는 가을바람에 움직이는 듯한 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그 아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인물 그리고 멀리 강가에는 돛단배와 외기러기가 시문되어 있다. 산수인물문은 ‘장한귀강동’을 소재로 한 문양으로 가을에 강동으로 떠나는 장한張翰을 송별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서진시대西晉時代 문장가인 장한은 낙양洛陽에서 벼슬을 하던 중 가을바람이 불자 고향인 강동江東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그리워 ‘인생은 자기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천리 밖에서 벼슬하여 명작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하며,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고사의 주인공이다.
반대편에는 능화창 안에 소상팔경 중 한 소재인 ‘동정추월 소재가 시문되어 있다. 동정추월은 소상瀟湘과 상강湘江 영릉군에서 합치되어 형양衡陽을 돌아서 들어가는 동정호洞庭湖의 가을달로 동정호의 복판에 솟아 올라있는 첨봉과 그 위편의 둥근 달의 모습은 조선 초기부터의 전통을 계승한 소재이다. 동정호 아래 강가에는 나룻배 한 척이 있으며, 강에는 가을 달이 비친 모습이 회화적으로 시문되어 있다.
본 작품은 18세기 유행한 산수 형식이 백자에 시문된 예로, 동체부에 시문된 맑은 청화빛의 서정적 회화와 시가 어우러진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인 시화일률 사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壺中日月 병 속에 해와 달이 비치고
醉裏乾坤 술 취한 가운데 세상의 이치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