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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마이아트옥션 메이저 경매

일시
2024-02-29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연락처
02-735-1110 / 9938
* 응찰은 프리뷰 기간 중 작품 상태를 모두 확인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기타 자세한 공지사항은 하단 'NOTIC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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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기사경회첩 상세보기
1744-1745 ㅣ 비단에 먹, 비단에 수묵채색
43.3×66.3㎝ 외
추정가
KRW  
200,000,000 - 40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기로회耆老會는 중국 당대唐代 백거이(白居易, 772-840)의 향산구로회香山九老會에서 시작되었고, 이 모임에서 노년기를 맞은 문인들은 사회적 지위와 성공을 떠나 오직 친교親交를 목적으로 하여 우정을 나누었다. 기로들은 여유롭게 시詩와 술을 나누고 거문고를 뜯고 바둑을 두는 등의 풍류를 행하였고, 모임을 자축하고 기념하는 의미로 이름을 쓰고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향산구로회의 예에 따른 송대의 휴양오로회睢陽五老會,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에서도 전례를 따라 그림을 남겼으며, 이후 당송대의 세 모임은 이상적인 고사故事가 되어 독립적인 화제畫題로 그려졌다. 중국에서 기로들이 모임을 열고 그림을 남기는 전통은 청대淸代까지 계속되었다. 한국에서는 현재 가장 오래된 예로써 고려시대 최당(崔讜, 1135-1211)의 해동기로회海東耆老會부터 기로회가 시작되어 <해동기로회도>가 제작된 기록이 있다. 이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기로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그것을 기념한 그림이 그려졌다. <기사경회첩>은 1744년 영조의 기로소 입사를 기념하여 제작한 것으로 그 다음해인 1745년 12월에 완성되었다. 영조의 기로소 입사는 25년 전 숙종의 선례를 본받아 실행되었고, 화첩은 숙종 45년의 <기사계첩>을 계승하여 제작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744년에 제작된 2점의 <기사경회첩>이 소장되어 있다. 본 <기사경회첩>은 총 11폭으로 <영조의 어첩자서>, <영조의 어제어필>, <어제에 차운한 기로신 6명의 신>, <좌목>, <영조의 경현당 선온시>, <승하전 진하전도>, <경현당 선온도>, <이성룡의 발문>, <감조관, 서사관, 화원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기로소 입사한 인물은 이의현(李宜顯, 1669-1745), 신사철(申思喆, 1671-1759), 윤양래(尹陽來, 1673-1751), 김유경(金有慶, 1669-1748), 이진기(李震箕, 1653-1748), 정수기(鄭壽麒, 1664-1752), 이하원(李夏源, 1664-1747), 이성룡(李聖龍, 1672-1748), 조원명(趙遠命, 1675-1749), 조석명(趙鍚命, 1674-1753)이다. 본 화첩에 수록된 기로회 그림은 2점으로 <숭정전 진하전도崇政殿進賀箋圖>는 영수각에 친림한 다음 날인 9월 10일 경희궁 숭정전에서 거행된 진하례陳賀禮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때 행사는 왕이 참여하지 않은 권정례權停例로 치러졌는데, 이는 숙종 때에 권정례로 치러진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화면에는 숭정전 뜰에 펼쳐진 돗자리 위에 기로신 5명이 서 있으며, 인물은 신사철, 윤양래, 이진기, 정수기, 이성룡이다. <경현당 선온도景賢堂宣醞圖>는 경희궁 경현당에서 영조가 기로신에게 선온한 장면으로 영조는 기로신에게 직접 지은 칠언시七言詩를 하사하였고, 이어서 기로신의 화답시를 올리도록 하였다. 영조는 기해년에 숙종이 기로신에게 은배銀杯를 하사한 것을 따라 은병銀甁을 하사하였다. 기로신은 영조에게 이 날의 행사를 기록하여 후세에도 전해지도록 청하였고, 영조는 이에 보답하여 어첩자서를 지었다. 경현당 선온에 참석한 인물들은 모두 전각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행사는 작은 규모로 치러져 마당에 따로 보계를 설치하지 않아 경현당 마당에는 연못이 드러나 있고, 경현당 북쪽으로는 영조의 자리가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행차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일월오봉도가 어좌 뒤편으로 설치되어 있으나, 예외적으로 <경현당선온도>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기로신은 세 줄로 앉아 있으며 맨 앞줄은 신사철, 윤양래, 이진기, 정수기, 이성룡 등 다섯 명의 기로신, 그 뒤로 기로신의 자제들과 기로소 신하들이 자리하였다. 경현당 실내에는 참석자들 좌우로 촛대가 3개씩 늘어서 있다. 밤에 치러진 행사 임을 말하는 동시에 햇볕을 가려주는 차일을 설치하지 않아 경현당의 기둥과 공포를 확인할 수 있다. 지붕 위의 토수, 잡상의 표현 또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기사경회첩>에는 궁중행사도에서 이례적으로 화첩의 제작에 참여한 감조관과 서사관을 비롯한 화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화원은 전별제前別提 장득만(張得萬, 1684-1764)(정6품), 첨지僉知 장경주(張敬周, 1710~?)(정3품), 전주부前主簿 정홍래(鄭弘來, 1720-1791 이후)(종6품), 참봉參奉 조창희(趙昌禧, ?~?)(종9품)의 화원명이 쓰여 있다.                                                                                                                                                                                                                                                                                                                                                                        [참고문헌]                                                                                         1. 임지연, 「肅宗 45년(1719)《耆社契帖》과 英祖 20년(1744)《耆社慶會帖》연구」,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 석사학위논문, 2017.                                                                                         2. 오민주, 「朝鮮時代 耆老會圖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협동과정 미술사학 전공 석사학위논문, 2009.                                                                                         3. 유시영, 「영조대 기로연도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 전공 석사학위논문, 2021.                                                                                                                                                                                                                                                                           [참고도판]                                                                                         1.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44×3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 53.2×37.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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