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4-12-05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본관 B1
연락처
02-735-1110 / 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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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금강산도 6폭 병풍 상세보기
종이에 수묵채색
각 39.8×52.1㎝
추정가
KRW  
30,000,000 - 6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금강산金剛山은 예로부터 신성시되어왔으며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성지로 추앙받았다. 금강산의 명칭은 풍악산楓岳山, 개차근산皆次斤山, 개골산皆骨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등의 영향으로 담무갈보살曇無竭菩薩이 1만 2천의 권속을 거느리고 주처하는 장소로 언급되는 지달산枳怛山, 기달산怾怛山 등이 금강산으로 의역되면서부터 금강산의 명칭이 대두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금강산은 불교 성지로 위상이 높아 명나라의 사신들은 조선에 방문하면 꼭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했다. 태종(太宗, 재위 1400-1418)대 온전溫全, 황엄黃儼, 조천보曹天寶, 고득高得, 세종(世宗, 재위 1418-1450)대 창성昌盛, 백언白彦 등이 대표적이며 세조(世祖, 재위 1455-1468)는 일본 국왕에게 보내는 글에서도 금강산을 언급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명으로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가 금강산 그림 5권 70폭의 화첩을 제작한 뒤 18-19세기 동안 여러 화원과 화가들에 의해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명승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금강전도金剛全圖>나 <봉래도권蓬萊圖卷>,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의 곳곳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지우재 정수영(之又齋 鄭遂榮, 1743-1831)의 《해산첩海山帖》, 도암 신학권(陶巖 申學權, 1785-1866)의 <금강전도병풍金剛全圖屛風> 등 이외에도 이들의 영향 아래 자유분방한 필력으로 그려진 민화 금강산도 병풍들까지 금강산은 한국 미술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본 출품작은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 명승을 그린 6폭의 작품으로 1폭부터 각각 소양정昭陽亭, 해장전海藏殿, 총석정叢石亭, 옥류동玉流洞, 만경대萬景臺, 원통암圓通庵의 화제가 쓰여있다. 2폭과 3폭의 화제 아래에는 조학로인趙鶴老印으로 추정되는 인장이 찍혀있다. 소양정은 춘천에 위치한 정자로 아마도 금강산 유람을 가거나 돌아오는 길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해장전은 금강산 내금강 지역의 표훈사表訓寺 해장전으로 생각되며, 총석정은 금강산 해금강 지역, 옥류동과 만경대, 원통암은 금강산 외금강에 위치한 명소이다. 따라서 6폭 외에 금강산의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을 비롯한 여러 장면을 묘사한 폭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해장전, 옥류동, 만경대, 원통암 등의 장면을 보면 가을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며, 사계로 나누어 그렸을 가능성도 있다. 6폭 화면은 필선 위주로 형태를 그리고 일부분만 채색을 가미하여 담백하고 명료하게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6폭의 그림 모두에 인물들이 등장하며 4폭 옥류동의 경우 계곡에서 행사를 하는 듯한 장면이 담겨 있어 주목된다. [참고문헌] 이영수, 「19세기 金剛山圖 硏究」,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16. 이지원,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연구」,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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