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두꺼비와 가지, 개구리와 연꽃을 그린 것으로 초충도草蟲圖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 초충도의 발달은 청동기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소재의 장르라 할 수 있다. ‘초충草蟲’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송대(宋代, 960-1279) 1006년 저술된 익주명화록益州名畵錄』부터이며 당대(唐代, 618-907)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 등의 기록에도 ‘화조花鳥’라는 용어를 통해 그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어 감상용 회화로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당대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이미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고려시대의 경우는 현전하는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현전하는 작품들을 통해 그 유행을 짐작할 수 있다.
두꺼비와 개구리는 이미 조선 초기부터 등장하는 소재로 먼저 개구리는 신경(申暻, 1696-1766)과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발문이 있는 전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초충도>에서부터 확인된다. 초충도 10곡병 중 그림이 있는 8폭의 3번째는 오이와 개구리, 7번째는 어숭이와 개구리로 각각 개구리가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꺼비의 경우도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하마가자蝦蟆茄子>에서 사용된 소재이다. 이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도 정선(鄭敾, 1676-1759)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꾸준히 등장한 소재이기도 하다.
본 작품은 2점 모두 종이에 수묵으로만 그려진 작품이며 각각 언덕 위에 있는 두꺼비와 좌측 상단에 표현된 가지, 연못에서 땅으로 올라오는 개구리와 좌측을 중심으로 상단에 표현된 연잎과 연꽃받침과 연자가 나타나고 있다. 화면의 한 측면 공간은 여백으로 구성한 사선 구도와 두꺼비와 개구리의 역동적인 자세 등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으로 봤을 때 조선 후기 이후에 그려진 작품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남주현, 「朝鮮時代 草蟲圖 硏究」,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석사학위논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