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4-09-12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본관 B1
연락처
02-735-1110 / 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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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다산 정약용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 상세보기
종이에 먹, 수묵
28.6×121.4㎝
추정가
KRW  
150,000,000 - 30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이 1818년 3월 8일, 제자인 초의 의순(草衣 意洵, 1786- 1866)이 소장한『석옥시첩石屋詩帖』에 제題한 글이다.『다산시문집』에는 누락되고 없는 귀한 자료다. 원래 첩帖으로 된 것을 액자로 개장하였다. 처음과 끝에 펼침면으로 그림을 실었다. 죽석도竹石圖와 분란 도盆蘭圖인데, 그림을 그린 이는 초의와 가깝게 지냈던 신관호(申觀浩, 1810-1888: 뒤에 신헌申櫶으로 개명)이다. 제문題文 뒤에는 원나라 때 승려 석옥 청공(石屋 淸珙, 1272-1352)의「산거잡영山居雜詠」시를 역시 다 산의 친필로 적고, 이를 차운한 다산과 초의의 시를 나란히 실었다. 다산은 자신의 시를 석옥의 시와 나란 히 적고, 초의의 시는 한 줄 내려서 썼다. 석옥의 시가 3수, 다산의 시가 2수, 초의의 시가 2수씩 실려 있다. 석옥 청공의「산거잡영」은 모두 24수로 되어 있으므로, 원래의 시첩은 석옥의 24수와 다산의 24수, 초의 의 24수가 같은 방식으로 적혀 있는 대단히 많은 분량이었을 것이다. 시첩을 해체하여 액자로 만드는 과정 에서 길이 때문에 뒷부분을 모두 잘라버렸다. 뒷부분이 어딘가 남아있을텐데, 애석하기 짝이 없다. 다산 등이 석옥 청공의「산거잡영」 24수를 차운한 작품은 김민영 소장의『육로산거영六老山居詠』이란 시집에 따로 전한다. 여기에는 석옥과 다산, 그리고 대둔사 승려 수룡 색성(袖龍 賾性, 1777-?)과 침교 법 훈(枕蛟 法訓, ?-?), 철선 혜즙(鐵船 惠楫, 1791-1858), 범해 각안(梵海 覺岸, 1820-1896) 등의 차운시 가 실려 있다. 다만 초의의 이 차운시는 이 책에도 실려 있지 않고,『초의시집』에도 누락되고 없는 귀한 작 품이다. 2수 밖에 없어 아쉽다. 서문에 따르면 초의 외에 대운 성홍(大雲 性弘, ?-?)과 철경 응언(掣鯨 應 彦, ?-?)의 차운시도 함께 실었다고 했다. 이 역시 액자로 바꿀 때에 잘려나간 부분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 다. 앞뒤 그림은 신관호가 그렸다. 앞쪽에 농묵과 담묵으로 죽석도를 그렸고, 수인首印은 장방형 백문인으로 인문은 ‘청정원淸淨園’이다. 뒤 쪽에는 화분에 담긴 난초를 그렸다. 화분 아래 주문인으로 ‘홍란음관묵연紅蘭吟館墨緣’을 찍었다. 작품 끝 에는 신관호가 친필로 “왕마힐은 누런 도자기로 빚은 그릇에 난초를 길렀다. 이제 초의 스님에게 드릴만 한 다.(王摩詰以黃甆斗養蘭, 今可供草衣師)”는 글을 쓰고, 주문인 ‘길상여의吉祥如意’와 음양인陰陽印으 로 된 ‘신관호인申觀浩印’을 찍었다. 신관호는 1843년 11월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로 해남에 내려와 초 의를 처음 방문하였고, 이후 오랜 기간 교유를 나누었던 인물이다. 이때는 다산이 세상을 뜬 뒤이므로, 다 산의 친필 시첩을 보고 그 앞 뒤 여백에 뒷날 신관호가 그림을 추가로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대둔사 승 려들이 원나라 승려 석옥 청공의「산거잡영」에 차운시를 쓰는 것이 일대 유행을 했다. 이는 다산의 서문 에서도 보듯 청허와 부휴 이래로 남북으로 갈려진 선종의 법맥에서 정통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아래 다산의 제문題文을 보면,「산거잡영」시의 차운을 통해 태고 보우로부터 내려온 선종의 정통성이 해남 대둔사에 있음을 강조하려 한 의도가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찰이 필요하다. 차생 활과 관련된 내용도 보이고, 다산의 초당 생활을 보여주는 내용도 들어 있어 자료 가치가 크다. 특히 불교 사의 흐름에 대한 다산의 이해를 알 수 있는 점에서 흥미로운 자료다. 원문과 역문은 다음과 같다. [작품수록처] 『古美術同好人 秋史誕生二百周年紀念展』, 白岳美術館, 1986. 德園美術館,『朝鮮時代書畫名品圖錄』, 1992. 孔畫廊,『文心과 文情』, 2010. 포스코미술관,『人, 사람의 길을 가다(포스코 창립 51주년 기념 특별전)』, 2019. 吾東禪系, 屢續屢斷. 高麗之季, 太古普雨禪師, 身入中國, 得法於石屋淸珙. 石屋者南宗 臨濟之後也. 太古七傳, 至芙蓉靈觀, 厥有二嗣, 一曰淸虛, 二曰浮休. 千枝萬條, 蔚然叢茂, 遂滿吾東. 太古普雨者, 東禪之大祖也. 禮曰褅其祖之所自出, 貴有本也. 雖尊庳級殊, 儒釋 道異, 石屋淸珙, 在法當褅, 其理則然. 使周人但知崇稷, 不知報嚳, 惡乎可哉. 然石屋之跡, 久益剗沒, 傳者無多. 長洲顧嗣立, 選其詩三十三首, 流傳海東. 有山居閑詠, 律詩十二首, 短句十二首, 尤淸警拔俗, 大抵其詩不屑爲藻繪競病, 皆本之心地, 怡然自得, 沖融澹湛, 發 之爲詩, 自然可悅. 上之可以方駕於寒山拾得, 下之可以弁首於憨山紫栢. 洵可以爲人之所 自出也. 余今山居十餘年, 居處食飮, 過從譚諧. 天然一禪老, 所異一撮之髻, 九經之業, 爲 有間而已. 遂欣然逐篇追和, 以暢幽懷, 略以四時分敍, 如古人山中四時之詞. 雖塵空逈殊, 其自瀉其心一也. 吾東禪講, 盛於湖南. 昔蓮潭有一, 主盟緇林, 名動搢紳. 其後有雲潭鼎 馹, 又其後有兒菴惠藏. 一公余兒時所從游. 余與先人之詩, 錄在其詩集, 所不可忘也. 馹公 余爲校其詩集, 且爲之序, 亦有緣者也. 藏公嘗與余講周易者也. 數十年來, 禪敎益衰, 鐸聲 廖絶. 唯馹之徒, 有大雲性弘, 藏之嗣有掣鯨應彦. 一公之孫, 有草衣意洵, 文識小勝, 學者 歸焉. 遂令是三人者, 續余和石屋之詩, 因錄爲卷. 玆所謂石屋詩卷也. 觀斯卷者, 宜知其源 委, 遂敍如此.歲嘉慶戊寅三月八日, 紫霞山樵 丁鏞書. 우리나라 선종의 계보는 자주 이어졌다 끊기곤 했다.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 普雨, ?-?) 선사 가 몸소 중국으로 들어가 석옥 청공(石屋 淸珙, ?-?)에게서 법을 얻었다. 석옥은 남종 임제臨 濟의 후예다. 태고가 일곱 차례 전하여 부용 영관(芙蓉 靈觀, 1485-1571)에 이르렀다. 그에게 는 두 제자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이요, 한 사람은 부휴 선 수(浮休 善修, 1543-1615)였다. 천 가지 만 줄기가 무성하게 우거져서 마침내 우리나라에 가 득 차게 되었다. 태고 보우는 우리나라 선종의 큰 선조다.『예기』에 말하기를, “그 조상이 나 온 곳에 제사 지낸다”고 했으니 근본이 있음을 귀하게 여긴 것이다. 비록 높고 낮음의 등급은 다르고, 유교와 불교의 도리가 차이 나지만, 석옥 청공은 법에 있어 마땅히 제사지내야 하니, 그 이치가 그런 것이다. 주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다만 후직后稷만 높일 줄 알고 곡嚳에게 보답 함을 알지 못하게 한다면 어찌 옳다 하겠는가. 하지만 석옥의 자취는 오래되어서 스러져 전하 는 것이 많지 않다. 장주 고사립(長洲 顧嗣立, 1669-1722)이 그 시 33수를 가려 뽑아 우리나 라에 유전케 하였다.「산거한영」이 있는데, 율시가 12수요, 단구가 12수였다. 특히나 청경하 여 속된 기운이 없다. 대저 그 시는 화려하게 꾸미거나 격률에 얽매이는 것을 즐기지 않았으니, 모두 마음에 근본을 두어 기쁘게 스스로 얻은 것이어서 해맑고도 담백하다. 이를 펴서 시로 지 으니 자연스러워 기뻐할 만 하다. 위로는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능가할 만하고, 아래로는 감 산憨山이나 자백紫栢과 머리를 나란히 할 만 하니, 진실로 사람됨이 저절로 나온 바라 하겠다. 내가 이제 산에서 산 지가 십여 년이다. 거처에서 먹고 마시며 지나다 들르는 사람과 담소하니, 간데없이 한 사람의 선로禪老다. 다른 점은 상투를 튼 것뿐이다. 그리하여 구경의 학업은 동 뜨게 되고 말았다. 마침내 기쁘게 매 편마다 따라서 화답하여 답답한 마음을 풀었다. 대략 4계 절로 차례를 나누었으니 옛 사람이 지은「산중사시사山中四時詞」와 같다. 비록 세속과 불교 가 현격히 다르지만 스스로 그 마음을 편 것은 한 가지다. 우리나라 선종의 강단은 호남에서 성 대하였다. 옛날 연담 유일(蓮潭 有一, 1720-1799)이 치림緇林에서 주맹하여 이름이 진신간 에 떨쳤다. 그 뒤 운담 정일( 雲潭 鼎馹, ?-?)이 있고, 또 그 뒤에 아암 혜장(兒菴 惠藏, 1772- 1811)이 있었다. 연담 유일 공은 내가 어렸을 때 종유했던 바다. 나와 돌아가신 아버님의 시가 그 시집에 실려 있어 잊을 수가 없다. 운담 정일 공은 내가 그를 위해 시집을 교정해주고 또 서 문을 써주었으므로 또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아암 혜장 공은 일찍이 나와 더불어『주역』을 공부했던 사람이다. 수십 년 이래로 선교가 점점 쇠하여져서 목탁 소리는 적막하게 끊어졌다. 오직 운담 정일의 무리에 대운 성홍(大雲 性弘, ?-?)이 있고, 혜장의 후사로는 철경 응언(掣鯨 應彦, ?-?)이 있다. 연담 유일 공의 후손에는 초의 의순이 있는데, 문식이 조금 나아 배우는 자 가 그에게도 돌아갔다. 마침내 이 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이어 석옥의 시에 화답하게 하고 인 하여 적어 책으로 만든다. 이것이 이른바『석옥시권』이다. 이 책을 보는 자는 마땅히 그 연원 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침내 이와 같이 적는다. 가경 무인(1818) 3월 8일, 자하산초 정용은 쓴 다. 吾家住在霅溪西 내 집은 삽계의 서편에 자리 잡아 水滿天湖月滿溪 천호天湖엔 물이 가득 달빛은 시내 가득. 未到盡驚山嶮峻 오기 전엔 산 험준함 모두들 놀라더니 曾來方識路高低 오고서야 높낮은 길 바야흐로 아는도다. 蝸沿素壁粘枯殼 흰 벽에 달팽이는 붙은 채로 말라있고 虎過新蹄印雨泥 범 지난 새 발자국 비 진흙에 찍혀있네. 閑閉柴門春晝寂 사립문 그저 닫고 봄 대낮은 적막한데 靑桐花發畵胡啼 푸른 오동 꽃이 피자 화호畵胡가 우는구나. 석옥 竹閣蕭蕭蓮寺西 백련사 서편으로 죽각竹閣이 호젓한데 書香墨色枕寒溪 책 향기 먹 빛깔이 찬 시내에 잠긴다. 山坡地急開庭窄 산 언덕 땅 가팔라 뜨락을 바투 여니 瀛海風多結屋低 집 아래 쪽으로는 바다 바람 늘 많다네. 園設石槽通暗水 돌 구유를 설치해서 땅 속 물을 끌어오고 階留木屐待春泥 섬돌의 나막신은 봄 진창을 기다리네. 一年榮悴隨時物 한해의 영고성쇠 계절 사물 따라 가니 行且花濃百鳥啼 이렇게 또 꽃은 피고 온갖 새들 우지지리. 다산 一笻遊盡五湖西 지팡이 짚고 오호五湖 서편 죄다 놀아 보았나니 隻履終歸隱碧溪 신 끌고 돌아와선 푸른 시내 숨어사네. 柳影春藏蕭寺暗 버들 그림자 봄날에 호젓한 절 감추이고 花陰晩壓石樓低 꽃 그늘 저물녘에 석루 낮게 눌렀구나. 殘檐補採經霜 무너진 처마 기우려고 서리맞은 풀을 캐고 破竈修飜沁雪泥 草깨진 부뚜막 고치고자 눈 녹은 진흙 들추네. 已許維摩開口重 유마의 입 열기 무거움 이미 허락하였으니 聽鶴唳作鶯啼 학 울음에 꾀꼬리 소리 듣게 될까 걱정일세. 怕 의순 柴門雖設未嘗關 사립문 달렸어도 닫혀 있는 법이 없어 閑看幽禽自往還 한가로이 새들이 들락거림 그저 본다. 尺壁易求千丈石 척벽尺璧은 천장석千丈石서 손 쉽게 구하지만 黃金難買一生閑 황금으론 일생의 한가로움 사기 어렵다네. 雪消曉嶂聞寒瀑 눈 녹은 새벽 뫼에 찬 폭포 소리 들려오고 葉落秋林見遠山 잎 져버린 가을 숲은 먼데 산이 드러난다. 古柏烟銷淸晝永 맑은 대낮 묵은 잣나무 안개에 잠겼나니 是非不到白雲間 시비는 흰 구름 사이엔 이르질 않는다오. 석옥 去住悠悠夢覺關 가고 머묾 유유해라 꿈인가 생시인가 故鄕雖在不求還 고향이야 있다 해도 돌아감 구치 않네. 閱世旣多雙眼大 세상 일 탈도 많아 두 눈이 휘둥그레 著書今癈一身閑 저서를 그만 두니 한 몸이 한가롭다. 谷深愛有摩雲木 골이 깊어 구름 나무 어루만짐 사랑하니 地瘴欣看頂雪山 장기瘴氣에도 눈 덮인 산 기쁘게 바라본다. 已道春聲承臘味 봄 소리가 섣달 술로 이어졌다 말을 하니 白鷗飛下綠波間 흰 갈매기 푸른 물결 사이로 내려앉네. 다산 香廚松徑靜無關 부엌과 솔길은 고요해 상관 않고 渴鹿饑麕許往還 목 마르고 주린 사슴 드나들게 허락하네. 得意寧思爲世用 뜻 얻었다 어이해 세상 위해 쓰이리오 將心直欲伴雲閑 장차 마음 이끌고서 구름을 벗 삼으리. 山櫻展葉遮紅日 산 앵도 잎을 펴서 붉은 해를 가리우고 磵竹刪枝露碧山 냇가 대 가지 치자 푸른 산에 이슬 듣네. 一段淸思誰與說 한 자락 맑은 생각 그 뉘와 얘기할까 無人解到白雲間 흰 구름 속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의순 幽居自與世相分 사는 곳 저절로 세상과 구분되니 苔厚林深草木薰 두터운 이끼 깊은 숲에 풀나무 향기롭다. 山色雨晴常得見 산빛은 비 개면 언제나 바라뵈고 市聲朝暮罕曾聞 저자 소리 아침 저녁 들리는 법이 없네. 煮茶瓦竈燒黃葉 기와로 된 부뚜막에 낙엽 태워 차 달이고 補衲巖臺翦白雲 바위 누대 기우려고 흰 구름을 잘라온다. 人壽希逢年滿百 사람 수명 백년을 채우기가 드물거늘 利名何苦競趨奔 어이 괴로이 명리 향해 앞 다퉈 내달으리. 석옥 *정민,『文心과 文情』(공화랑, 2010), pp.80-83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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