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백자의 사용 계층이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도 조선왕실은 이와 구별되는 청화백자를 사용함으로써 격조를 유지했다. 본 출품작은 이러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분원에서 제작된 2점의 기종은 발과 접시로 다르지만, 동일하게 시문된 변형 보상화당초문과 태토와 청화의 빛깔을 보면 고급 기명으로 함께 제작된 일종으로 추정된다. 특히 두 작품 모두 ‘상실上室’이라는 명문이 굽바닥에 적혀있는데 여기서 상실은 궁궐의 대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슷한 문양과 기형을 가지면서도 다른 명문을 가진 백자를 통해 유물의 제작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제수각齊壽閣을 의미하는 <백자청화제수대접白磁靑畵齊壽大楪>이나, 운현궁을 의미하는 <백자청화운현명접시白磁靑畵雲峴銘楪匙>[참고도판 1,2]와 유사한 형태나 문양 포치로 봤을 때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제수각은 1867년 11월 경복궁을 중건하며 완성되었고, 흥선대원군의 사저인 운현궁은 1863년 고종이 왕위에 오르며 명명되었다. 따라서 상실명 백자 역시 제수·운현명 백자와 비슷한 시기인 19세기 중반 경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청화 푸른빛에 물들다』(2014), pp. 2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