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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2-05-19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연락처
02-735-1110 / 9938
* 응찰은 프리뷰 기간 중 작품 상태를 모두 확인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기타 자세한 공지사항은 하단 'NOTIC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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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초정 박제가
연행시초권 상세보기
액자
21×94㎝
추정가
KRW  
50,000,000 - 8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조선 후기 실학자며, 18세기 북학파의 거장인 초정 박제가(楚亭 朴齊家, 1750-1805)의 친필 서첩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 자는 차수次修·재선在先·수기修其다. 호는 초정·정유貞蕤·위항 도인葦杭道人이다. 승지 박평朴坪의 서자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박제가는 앞뒤로 중국을 모두 4차례나 다녀왔다. 이 〈연행시초권燕行詩抄卷〉은 41세 때인 1790년 5월, 건륭제의 팔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부사 서호수徐浩修의 종사관으로 2차 연행을 떠났을 때와, 잇달아 같은 해 겨울 3차 연행길에 올랐을 때, 그곳에서 만난 6인의 중국 문인에게 준 시 6제 8수를 친필로 옮겨 적은 것이다. 「최경칭의 죽루도권에 적다題崔景偁竹樓 圖 卷」·「시랑 담계 옹방강에게 부치다寄翁覃溪侍郞」·「강덕량 어사에게 부치다寄江德 量御史」· 「주사 증욱의 〈서계어은도〉 두루마리에 제하다(題曾主事燠西溪漁隱圖卷)」 2수·「오백암의 〈석호과경도〉에 제하다(題吳白菴吳石湖課耕圖卷)」 2수·「사천으로 돌아 가는 태사 장선산과 작별하며(別船山太史歸四川)」 등이 그것이다. 칸을 쳐서 박제가 특유의 단정한 행서체로 차례로 옮겨 적었다. 6편 모두 박제가의 『정유각집 貞蕤閣集』 시집 권 3에 수록되어 있다. 각 시편 끝에 작은 글씨로 해당 인물에 관한 정보를 적은것은 문집에 없는 내용이다. 박제가가 추사秋史 강덕량江德量과 옹방강의 소미재蘇米齋 에서 만난 일과, 그밖에 나빙羅聘 등과 교유한 내용이 실려 있어, 연행 당시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작품 끝에 백문白文으로 ‘신제가인臣齊家印’이란 인장이 찍혀 있다. 두인頭印은 타원형의 주문朱文으로 인문은 ‘죽원십○서竹園十○書’로 되어 있다. 원문도 현행 문집본과 몇 글자가 다르다. 시의 원문과 풀이는 다음과 같다. 최경칭의 죽루도권에 적다 題崔景偁竹樓圖卷 내게는 대숲 속의 생각 있으니 我有竹裏想 하루에도 천백번 아른거리네. 一日千百幻 바라건데 일만 그루 빼곡 심고서 乍願密万介 처자가 저편에서 부르게 하리. 妻子隔呼喚 바라건데 한쪽 면 틔워 놓으면 乍願開一面 층층 누각 구름 위로 반쯤 솟겠지. 層樓出雲半 여름에는 흩날리는 눈 생각하고 夏念雪離披 낮엔 어지러운 달빛 떠올린다네. 晝思月凌亂 다시금 어린 죽순 먹으려 하니 復欲噉稚笋 장부臟腑인듯 뻗은 줄기 솟아났구나. 臟腑出脩幹 최군은 죽루를 생각해 내어 崔君擬竹樓 그림으로 그려서 감상케 했지. 畫圖供把玩 지산 송보순宋葆淳과 양봉 나빙羅聘은 芝山及兩峯 뜻과 솜씨 모두가 반짝 빛났네. 意匠悉瀾漫 누각을 일으킴은 각각 달라도 起樓各不同 대나무 사랑만은 차이가 없지. 愛竹兩無間 자유는 참으로 괜찮은 사람 可人王子猷 나머지는 이미 물을 댄 듯 해. 餘子如旣灌 그림의 바깥으로 몸을 빼내면 將身出畫外 머물 곳은 다만 궤안 뿐이리. 所留惟几案 다시금 그 속으로 들려고 해도 復欲入其中 둥근 바위 곁에서 기침이 잦네. 屢欬拳石畔 문동文同의 묵군당墨君堂에 오른 듯 하고 如登墨君堂 추성관秋聲觀서 웃으며 만나본듯해. 笑晤秋聲觀 맑은 바람 어느새 매끄러운데 淸風旣流利 먼데 연기 걸렸다간 끊어지누나. 遠煙復橫斷 허공 닿은 기운 홀연 흔들리더니 捎空勢忽奮 비오려나 빛이 먼저 바뀌는구나. 將雨色先換 대나무 갈라지는 소리 들린 듯 髣髴聞解籜 자던 참새 빈 탄환에 깜짝 놀라네. 睡雀驚虛彈 황강黃岡 사람 왕우칭王禹偁을 배우지 않고 不學黃岡人 초록 마디 멋대로 쪼개 가르네. 綠節恣剖判 그대의 죽루시를 계기로 삼아 系君竹樓詩 회포를 한 바탕 풀어 보노라 風褱一蕭散. 최경칭은 산서 평양 사람이니, 지산 송보순의 내제內弟다. 지산은 시와 그 림으로 공경公卿의 사이에 이름이 났다. 경칭을 위해 죽루도를 그려주었 다. 경칭은 나이는 젊지만 또한 시에 능하다. 한림 홍량길이 훗날 시로 이름 이 날 것이라고 칭찬했다. 수녕현 사람 장문도 또한 몇 수의 절구를 지었다. 나양봉이 또 한폭의 그림을 그렸는데, 지산의 그림과는 배치가 같지 않다. 景偁山西平陽人, 宋芝山葆淳內弟. 芝山以詩畵名於公卿間, 爲景 偁作 竹樓圖. 景偁年少, 亦能詩, 翰林洪亮吉稱其他日以詩鳴. 遂 寧張問陶 亦題數絶句. 羅兩峯又作一圖, 與芝山圖, 位置並不同. 시랑 담계 옹방강에게 부치다 寄翁覃溪侍郞 우뚝이 금석이 세상을 벗어나니 蕭然金石出風塵 긴 노래 붓 떨구면 구절마다 신묘하다. 落筆長歌句有神 청담이 한 격 높음 괴이할 것 없으리 無怪淸談高一格 소재蘇齋의 문하에 향 피우던 사람일세. 蘇齋門下瓣香人 강덕량 어사에게 부치다 寄江德量御史 가슴 속 고고도考古圖를 스스로 믿으시니 自信胸中考古圖 거리 가득 가짜 화첩 근심스레 보았다네. 愁看贋帖遍街衢 강추사 선생께 정녕 말씀 올리나니 丁寧寄語江秋史 원우元祐 적의 글씨는 다시 못볼런지요. 元祐人書再覯無 강추사는 금석문에 조예가 깊었다. 일찍이 담계의 소미재蘇米齋 가운데서 만났는데, 송나라 때 명현의 진적을 몹시 많이 보여 주었다. 江秋史深於金石. 常遇於覃溪蘇米齋中, 示以宋朝名賢眞蹟甚多. 주사 증욱의 〈서계어은도〉 두루마리에 제하다 題曾主事燠西溪漁隱圖卷 얕은 물에 가죽신 같은 작은 배 겨우 띄워 淺水纔浮革履船 갈대 사이 바람 햇빛 연이어 지나누나. 葦間風日去延緣 조정에서 한 조각 도롱이 옷 꿈꾸며 巖廊一片蓑衣夢 그림만 펼쳐봄이 어느덧 다섯 핼세. 忽漫披圖已五年 가슴 속에 한 자락 장취원將就園을 담아두고 一副胸中將就園 구파정鷗波亭서 척령鶺鴒의 들판과 마주했지. 鷗波亭對鶺鴒原 왕어양王漁洋 늙기 전에 왕서초王西樵가 떠나가니 漁洋未老西樵逝 강남 땅 황엽촌서 애간장만 끊겠구려. 膓斷江南黃葉邨 증주사는 자가 빈곡이니, 강서 남성 사람이다. 현재 군기방軍機房을 맡고 있다. 일찍이 그 형과 함께 서호 유람을 가서, 함께 숨어 의탁하기로 약속하였다. 만상린萬上遴이 이 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미곡未谷 계복桂馥이 두루마리 첫 머리에 큰 글자를 썼다. 또 허 조계許兆桂 등 여러 명사가 시詩로 제발을 달았다. 그러나 빈곡이 급작스레 형의 상을 만났으므로 스스로 그 두루마리에 제하여 사람과 거문고의 애통함이 있다고 운운하였다. 曾主事字賓谷, 江西南城人. 現任軍機房. 常與其兄作西湖之遊, 約諧隱托, 萬上遴 爲之圖. 桂未谷馥題卷首大字, 又有許兆桂等諸 名士詩跋, 而賓谷遽遭兄之服, 自 題其卷, 有人琴之慟云云. 오백암의 〈석호과경도〉에 제하다 題吳白菴吳石湖課耕圖卷 오가만은 범가만과 잇달아 붙어 있어 吳家灣接范家灣 예로부터 시인들이 이 사이를 오갔다네. 終古詩人此往還 다만 하나 푸른 산을 내 홀로 즐기지만 只一靑峯吾自樂 백안으로 티끌세상 내려봄은 아니라오. 非關白眼傲塵寰 구름 산의 사찰은 남조 시절 떠올리고 雲山蕭寺記南朝 호숫가의 인가는 그림 속에 아득하다. 湖上人家畵裡遙 설령 십년 동안을 홍진에 산다해도 縱使十年趨紫陌 가슴 속의 구학(丘壑)이야 없애기 어려우리. 胸中邱壑定難消 백암의 이름은 오조吳照다. 강서 양성 사람이다. 『설문편방고 說文偏傍考』와 『남조사 정어南朝史精語』등의 책을 지어 세상에 간행했다. 시에 능하고 묵죽을 잘 그렸다. 〈석 호도石湖 圖〉는 나양봉의 작품이다. 나양봉의 제시에 이르기를, “봉황지 鳳凰池 위로 가서 살기를 좋아하나, 이 사이는 도리어 내 집만도 못하다네.”라고 하였다. 당시 백암 이 과거를 보려고 북경에 있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내게 ‘석호어은石湖漁隱’이란 큰 글자를 두루마리 첫머리에 써달라고 청했는데, 옹담계가 이를 보고 말했다. “성세에 은 隱을 일컬음은 합당치가 않네.” 백암이 급히 고쳐 ‘과경課耕’이란 두 글자로 고쳐 써주 기를 청하여 장황하였다. 내 시 중에 ‘가슴 속의 구학’ 운운한 것은 바로 나양봉을 위해 조롱 풀이를 한 것이다. 白菴名照, 江西雨城人. 著說文偏傍考南朝史精語等書, 行於世. 能詩善墨竹, 其石 湖圖羅兩峯作也. 兩峯題詩云: 好向鳳凰池上 住, 此間還讓老夫屋. 時白菴赴考在 京故云. 請余書石湖漁隱大字 於卷首, 翁覃谿見之曰: 聖世不合稱隱. 白菴遽改請 書課耕二字付 裝, 余詩中胸中邱壑云云, 卽爲兩峯解嘲也. 사천으로 돌아가는 태사 장선산과 작별하며 別船山太史歸四川 촉객은 시를 지어 벽계방(碧鷄坊)을 묻는데 蜀客題詩問碧鷄 행인은 말을 몰아 점제현을 나서네. 行人驅馬出黏蟬 돌아보는 곳마다 그리운 맘 쌓였으니 相思揔有回頭處 강물은 동쪽으로 해는 서쪽 향해가네. 江水東流日向西 ‘점제’의 ‘제’는 음이 ‘제’다. 왕어양은 잘못해서 선先 운에 압운했으므로, 이제 바로잡는다. 黏蟬之蟬音提. 漁洋誤押先韻, 今正之. 선산 장한림은 이름이 문도이니, 문단공 장붕핵의 현손이다. 단 정하면서도 절조가 있 어 능히 가풍을 이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그 집에 우리 숙종 임금의 어휘첩御諱帖이 있 다고 하는데, 대개 문단공이 예부상서를 맡고 있을 때였다. 船山張翰林, 名問陶, 文端公鵬翮玄孫. 端方有操, 克紹家風. 自言其家有我肅考御 諱帖, 盖文端公任禮部尙書時也. * 정민, 『文心과 文情』(공화랑, 2010), pp.76-79 발췌. [작품수록처] 『朝鮮時代書畵名品圖錄』, 덕원미술관, 1992. 『文心과 文情』, 공화랑, 2010. 『人, 사람의 길을 가다(포스코 창립 51주년 기념 특별전)』, 포스코 미술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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