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제작할 당시 명문을 시문하기도 하지만 그 이후 사용처에서 장소나 그릇의 용도 등을 점각하기도 한다. 본 대접도 제작연도와 사용처 등을 점각한 왕실 소용 청화백자로 생각된다.
본 작품의 굽 내저면에는 한글로 ‘임자큰뎐고간사듁’이라는 명문이 점각으로 새겨져 있다. 임자년은 1852년으로 추정되며 ‘큰뎐’은 대전으로 대전의 곳간에서 사용된 대접임을 알 수 있다. ‘듁’은 죽으로(1죽=10개) 당시 40개를 제작하였고 그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릇 외면에는 구연부와 굽부분에 각각 청화로 두줄을 둘렀으며 몸체에 수복문을 번갈아가며 시문하였다. 그릇 내저면에는 두줄로 원문을 그린 뒤 가운데 복자를 그려넣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명문이 시문된 대접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중 확인되는데 외면의 수복문과 내저면 중앙의 문양에서 차이를 보인다.
[참고문헌]
1.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청화靑畵- 푸른빛에 물들다』, 2014.
2. 곽희원, 「朝鮮後期 王室磁器의 銘文과 意味」,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한국미술사전공 석사학위논문, 2015.
[참고도판]
1. <백자청화수복문대발白磁靑畵壽福文大鉢>, 조선, 高 17.5, 口徑 30.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신수 14753)
2. <백자청화「수」자문발白磁靑華「壽」字文鉢>, 조선, 高 10.5, 口徑 19.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구 2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