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출품작은 높이 11㎝의 소형 금동여래좌상金銅如來坐像으로 낮은 무릎과 허리가 긴 장방형의 상반신으로 세장한 이등변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머리는 촘촘하고 일정한 나발螺髮과 높은 육계肉髻가 표현되었다. 얼굴 형태는 갸름한 역삼각형으로 이목구비가 작고 부피감이 없어 수척한 느낌을 준다. 이마는 비교적 좁게 조성되었고 이마 중앙에는 백호白毫가 크게 표현되었다. 눈썹 아래 안와는 깊은 각을 주어 조각했으며 눈 두덩이 부분이 넓게 조성되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었고 대의大衣 사이로 드러난 가슴은 양감이 있고 사실적인 인체에 가깝게 표현되었다.
수인手印은 설법인說法印을 취하였는데 오른손은 가슴 높이로 들어 정면을 향하여 중지와 엄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띄워 위를 향해 중지와 엄지를 맞대고 있다. 이러한 수인의 형태는 주로 아미타불상阿彌陀佛像에서 확인되는 형태로 불상의 존명尊名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착의는 내의內衣와 그 위로 통견의通肩衣 형식의 대의를 입은 것으로 생각된다. 내의는 이를 직선으로 묶은 두 줄의 띠와 띠를 리본형태의 매듭으로 묶은 자락이 표현되었고, 띠 위로 물결형으로 접힌 내의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대의는 목 양 옆의 옷자락 등 직선 위주로 옷주름으로 표현되었는데 옷주름은 깊은 각을 주어 입체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하반신의 가장 하단에 흘러내린 옷자락은 물결과 같은 형태로 마감하고 있다.
본 출품작은 고려 후기의 불상들과 비교되며 유사한 상으로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금동불좌상[비교도판1] 등이 있다. 고려 후기는 전통양식과 함께 원(元, 1271-1368)의 영향으로 티베트계 불상 양식 등이 유입되어 영향을 미쳤다. 티베트계 불상 양식의 영향은 조선 초까지 이어져 티베트계 명(明, 1368-1644) 양식의 불상들이 제작되기도 했다. 본 출품작의 경우 전체적으로 전통양식의 상들과 유사하며 비교적 크게 표현된 백호와 얼굴 표현, 신체의 표현 등은 외래양식의 영향을 받은 상들과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1. 정은우, 「여말선초 소금동불의 유행과 제작기법의 변화」, 『미술사학』24,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0.
2. 정은우, 「고려후기 불교조각과 원의 영향」, 『진단학보』114, 진단학회, 2012.
3. 김경미, 「朝鮮 前半期 티베트系 明樣式 佛敎美術의 影響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미순사학전공 박사학위논문, 2014.
[참고도판]
<금동여래좌상>, 여말선초, 높이 63.5㎝, 서울역사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