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3-03-09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연락처
02-735-1110 / 9938
* 응찰은 프리뷰 기간 중 작품 상태를 모두 확인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기타 자세한 공지사항은 하단 'NOTICE' 참조
확대보기
54
고람 전기
징심시회도축 상세보기
종이에 수묵
25.4×94.5㎝
추정가
KRW  
120,000,000 - 25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징심정에서 조희룡을 그리워하네      징심정澄心亭은 지금 서대문역을 중심으로 하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경기대 학교 쪽을 바라보는 방향 어느 곳엔가에 있던 정자이다. 요절한 천재 화가 고람 전기(古藍 田琦, 1825-1854)가 그린 <징심정시회도澄心亭詩會圖>의 화제에 ‘청성靑城에서 제일가는 정자’라고 쓰여 있을 뿐이어서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문헌을 찾아봐도 징심정에 대한 기록은 없다. 징심헌澄心軒이나 정심루澄心樓란 이름은 보이지만 모두 경상남도 양산 또는 합천에 있는 누정일 뿐이다. 다만 저 ‘청성’이란 지명에 주목해 펴보면 몇 군데가 있어 그 위치를 탐색할 수 있다. 한양에서 청성이란 지명은 두 곳이 있다. 첫 번째 청성동靑城洞은 종로구 관훈동 일대를 말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로구 견지동과 관훈동에 흡수됨에 따라 지금은 사라진 이름이다. 그 유래는 우의정에 이른 인물인 성부원군靑城府院君 김석주(金錫胄, 1634-1684)가 살던 고을이라는 데서 시작되었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종각으로 향해 뻗은 큰길 왼쪽 그러니까 지금 조계사 길 건너편 관훈동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징심정시희도>를 그린 화가 고람 전기가 살던 수송동에서 멀지 않다. 두 번째 청성 땅이 있다. 지금 서대문 네거리에서 남쪽 서울역 방향으로 뻗은 길 왼쪽 의주로 1가 일대도 행정지명으로 청성군계靑城君契라 불렀다. 서대문이었던 돈의문을 나서 한양성곽 밖 반송방盤松坊 일대를 가리킨다. 이 두 군데 청성 땅 가운데 징심정이 있던 청성은 어느 곳일까 생각해보면, <징심정시회도> 하단에 옆으로 성곽이 길게 흐르고 있다. 지형을 생각하면 이 성곽은 한양성곽이다. 따라서 화면 상단의 산과 건물, 냇가와 다리,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은 성 밖의 풍경이다. 성곽을 나서면 처음 만나는 냇가가 바로 넝쿨내라고 하는 만초천 상류다. 만초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그 이름은 경교京橋이고 이 경교를 건너면 한성부 관아가 위용을 과시한다. 물론 한성부 관아는 지금 서울적십자병원으로 바뀌어 있는데 이곳 관아를 지나 계속 서쪽으로 더 나가면 애오개라고 하는 아현阿峴 고갯길이 나오고 남북 양쪽으로는 무악산 줄기가 우뚝우뚝 솟구쳐 있었다. 그림의 중앙에 여러 겹으로 솟아오른 봉우리는 무악산 봉우리들인 셈이다. 고람 전기가 써놓은 글을 보면 이 모임에 큰 문장가인 사백詞伯을 여럿 모셨다고 한다. 그들 문장가의 이름은 밝혀두지 않아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짐작하는건 어렵지 않다. 1847년에 결성한 벽오사碧梧社 맹원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 또 화제에 써넣은 ‘그리워하는 선생’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 선생은 벽오사의 좌장일 뿐만 아니라 당대 묵장의 영수로 추앙 받던 화가이자 문장가인 우봉 조회룡(又峰 趙熙龍, 1789-1866)일 것이다. 고람 전기가 스물일곱 살 때인 1851년 그해 8월 22일 조희룡이 전라도 임자도로 유배를 떠났다. 하염없이 늘 따르던 선생이었다. 사회가 열릴 때에도 언제나 함께 했는데 별안간 유배라니. 더구나 그 유배 이유라는 게 놀랍게도 왕위계승이라는 대통大統 관련이라 사족이 아니면 감히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중인 주제라지만 평생 헌종(憲宗, 1827-1849)의 총애를 받던 우봉 조희룡이었으므로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벽오사 맹원들이 느낀 충격은 너무도 컸고 해서 이들이 징심정에 모일 때면 늘 그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래서 전기는 이 그림의 화제에 ‘우러러 선생의 시와 술의 사이에 올린다’며 ‘시에 귀신이 울고, 술로 옥산玉山이 무너지던 그때를 떠올려본다’고 하였다. 시회가 열렸던 징심정은 벽오사 맹주 산초 유최진(山樵 柳最鎭, 1791-1869) 이후의 소유였을 것이다. 유최진의 집은 ‘시냇가에 있었고 우물가에 늙은 벽오동이 있어 벽오사라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곳 벽오사는 시내 청석골 본가를 말하는 것이고 징심정은 별채를 가리키는 것일 게다. 의원으로 부유했던 유최진은 풍광이 수려한 한양성곽과 만초천이 어울린 이곳 무악산 기슭에 별채를 마련해두고 좋은 날이면 맹원들을 불러모으곤 했던 것이겠다. 우봉 조희룡이 자리를 비워버려선지 그림마저 텅 빈 느낌이다.      [참고문헌] 최열, 『옛 그림으로 본 서울』, 혜화, 2020, pp. 193-197 발췌.   [수록처] 공화랑, 『文心과 文情』, 2010. 포스코미술관, 『人, 사람의 길을 가다(포스코 창립 51주년 기념 특별전)』, 2019      [인문] 金容鎭家珍藏, 閒裏工夫澹中玆味, 大雅, 田琦, 古藍 
Condition
 
추천작품
top

현재 진행중인 경매가 없습니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