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2-11-17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연락처
02-735-1110 / 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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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누숙경직도 상세보기
종이에 수묵담채
35.5×25.7㎝
추정가
KRW  
300,000,000 - 1,00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누숙경직도>는 남송 때 절강성 임안부臨安府 오잠현於潛縣의 현령을 지낸 누숙 (樓璹, 1090-1162)이 농사와 잠직蠶織의 실정을 경도耕圖 21면과 직도織圖 24면으로 그리고, 각각에 시를 더해 고종에게 헌상한 작품이다. 누숙은 소흥3년(1133)에 오잠현령於潛縣令으로 부임했다가 소흥5년(1135)에 소주통판邵州通判에 임명되었기에 <누숙경직도>의 원 제작 시기는 1133-1135년 사이로 추정된다. <누숙경직도>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누숙의 조카 누약(樓鑰, 1137-1213)이 참지정사參知政事라는 고위직을 지내면서 백부伯父의 <경직도>를 선양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누약 외에도 누숙의 손자 누홍樓洪 등도 참여하였다. 1210년 누홍과 누심樓深은 「누숙경직도시樓璹耕織圖詩」를 새긴 석비를 제작했으며, 이때 누약과 누홍의 「경직도후서耕織圖後序」가 지어졌다. 1210-1213년에 누약이 <누숙경직도>를 모사한 회권繪卷 두 점을 제작하여 황태자에게 진상하면서 동궁東宮을 교육하는 감계용 회화로 활용되었다. 1237년에는 왕강汪綱이 처음으로 목판본을 만들었으며, 누약의 장손 누표樓杓가 발문을 쓴 뒤에 이종理宗 황제에게 진상되었다. 남송대에는 회본繪本, 석각비, 목판본 등 여러 형식으로 <누숙경직도>가 제작되었으며, 『시경』 「빈풍豳風」 편을 그린 <빈풍칠월도豳風 七月圖>와 『서경書經』 「무일無逸」편을 도해한 <무일도無逸圖>와 함께 민본주 의에 바탕을 둔 궁중 감계화鑑戒畵로 기능하였다. 원대에는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에 의해 모본이 제작되고, 농서에 활용되는 등 농업정책과 관련된 교본으로 전파되었다. 명대에는 <누숙경직도>의 실용적인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전통적인 남경여직男耕女織을 나타내는 이상적인 도상으로 인식되면서 세부표현과 배경에도 변화를 보였다. 청대에는 강희제의 명에 의해 1696년에 <누숙경직도>에 근거하여 서양화법까지 구사된 <패문재경직도> 목판 본과 화첩이 제작되었으며, 황제의 이상적인 치국 이념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에 <누숙경직도>가 들어온 것은 성현(成俔, 1439-1504)의 『허백당집虛白堂集』 「봉교경직도후서奉敎耕織圖後序」에서 처음 확인된다. 그는 “무오년 (1498), 연산군 4년에 정조사正朝使 권경우(權景佑, 1448-1501)가 북경에서 돌아와 <누숙경직도> 1질을 성상聖上(연산군燕山君)께 바쳤는데, 가는 붓으로 그려 낸 솜씨가 정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성상께서 화공에게 명하여 그 필적을 그려내 고 채색을 입히게 하였으며, 임사홍(任士洪, 1445-1505)에게 서시序詩를 쓰게 하여 드나들 때 보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으셨다”고 하였다. 이글은 성현이 대제학으 로 재임하던 1500년(연산군 6) 무렵의 글로, 권경우가 입수해 온 경직도는 아마도 1462년 명나라의 송종로宋宗魯가 간행한 본이었으리라 추정된다. 한범제(韓范齊, 1634-1695)의 수장인이 있는 본 <누숙경직도>는 숙종 연간에 제작된 채색 화첩으로, 서문과 함께 경도耕圖 21면과 직도織圖 24면이 온전하게 수록된 작품이다. 근래 장황된 첩의 표지에는 평산 신씨 석농石農이라는 제첨題簽이 있으며, 서문인 「경직도기耕織圖記」가 5면에 걸쳐 쓰여 있다. 서문의 첫 면 아래에는 ‘서원西原’, ‘한범제인韓范齊印’, ‘일지一之’ 등 3과의 인장이 수직으로 찍혀 있다. 한범제는 본관이 청주淸州, 자字가 일지一之로 숙종연간(1674-1720) 에 활동한 인물이다. 조부는 한협韓協, 부친은 한수기韓壽琦이며, 큰아버지 한치 량韓致良에게 입양되었고 1675년(숙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내직으로 전적典籍‧지평持平‧장령掌令‧헌납獻納 등을 지냈고 외직으로 무안 현감 (1680-83년), 정산 현감(1686년), 임천 군수(1688-89년), 영해 부사(1694-95년) 등을 지냈다. 한범제의 몰년이 1695년이므로, 그 이전에 제작된 작품으로 확인된다. 사대부의 경우 경직도의 수장과 활용이 대부분 지방관 재직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위의 무안, 임천 등에서 제작, 소장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농사와 잠직을 주제로 한 45면의 그림은 상단에 누숙의 시와 하단에 그림 이 실린 상문하도上文下圖 형식이다. <경직도>는 크게 농사를 짓는 모습을 담은 ‘경작도耕作圖’와 누에치는 모습을 담은 ‘잠직도蠶織圖’로 대별되며 ‘경작도’ 21 장면과 ‘잠직도’ 24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작도에 그려진 장 면은 1. 씨 불리기[浸種]‚ 2. 논 갈기[耕]‚ 3. 거친 써래질[耙耨]‚ 4. 고운 써래질[耖] ‚ 5. 고무레질[碌碡]‚ 6. 씨 뿌리기[布秧]‚ 7. 거름 주기[淤陰]‚ 8. 모 찌기[拔秧]‚ 9. 모 심기[揷秧]‚ 10. 초벌 김매기[一耘]‚ 11. 두벌 김매기[二耘]‚ 12. 세벌 김매기[三 耘]‚ 13. 물대기[灌漑]‚ 14. 벼 베기[收刈]‚ 15. 볏단 쌓기[登場]‚ 16. 도리깨질[持 穗]‚ 17. 벼 까부르기[箕場] 18. 맷돌 갈기[礱]‚ 19. 방아 찧기[憃碓]‚ 20. 채 거르기 [籭]‚ 21. 창고 들이기[入倉]이며‚ 잠직도에 그려진 장면은 1. 「누에 씻기[浴蠶]」, 2. 누에 내리기[下蠶], 3. 누에 먹이기[餵蠶], 4. 첫잠[一眠], 5. 두잠[二眠], 6. 석잠 [三眠], 7. 잠에서 깬 누에[大起], 8. 채반 갈아주기[分箔], 9. 뽕 따기[採桑], 10. 막 밥[捉績], 11. 누에 올리기[上簇], 12. 채반 덥히기[炙箔], 13. 누에 내리기[下簇], 14. 고치 고르기[擇繭], 15. 고치 움[窖繭], 16. 실 뽑기[繅絲], 17. 누에 나비[蠶 蛾], 18. 누에 제사[祀祝謝], 19. 실 켜기[絡絲], 20. 비단 짜기[經], 21. 물레질[緯], 22. 길람[織], 23. 수놓기[攀花], 24. 마름질[翦帛]이다. 여기에 실린 시는 송 누숙 이 지은 것으로 각 그림마다 1편의 시가 첨부되어 있다. 한범제 소장본은 서문의 인장을 통해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숙종 연간인 1695년 이전에 제작된 <누숙경직도>의 유형을 보여주는 화첩으로, 일본의 아쓰기본을 따르면서 상문하도 형식을 띠는 작품이다. <누숙경직도>가 민간에서 제작되고 감상된 사례로서, 현전하는 작품들이 온전하게 전하지 않는 상태에서 서문과 함께 45면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도 중요 한 지점이다(일본 동경 국박본: 직도 22면, 아쓰기본: 경도 19면, 직도 20면, 국박본: 경도 12면, 직도 18면). 가장 근접하는 국박본에서 결실된 장면들을 살필 수 있으며, 현전 작품들과의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조선시대 <누숙경직도> 의 제작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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