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泉東臺 복천동대
17세기 조선후기에는 산수 유람이 성행하면서 많은 사대부가 금강산과 같은 명소를 유람하고 기록을 남겼다. 마
찬가지로 예부터 충북지역의 명소로 알려진 속리산은 금강산의 절경에 버금간다고 하여 ‘소금강小金剛’으로 불
리기도 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복천암福泉庵은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진정선사眞定禪師
가 창건한 사찰이다. 세조(世祖, 재위 1455-1468)가 요양을 위해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다. 주요 무대인 복천 동
대는 복천암 근처 수암화상秀庵和尙과 학조화상學祖和尙의 부도가 자리한 부도대浮圖臺로, 예부터 속리산의
내·외 승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서 알려져 왔다.
그림은 필치와 화법으로 보아 조선 후기 여항 문인들 가운데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와 절친했
던 화원 복헌 김응환(復軒 金應煥, 1742-1789)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화가는 주제가 되는 부도대를 내려다
보듯이 포착하여 간결하게 그려냈다.담채로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원경을, 농묵의 미점으로는 울창한 토산을
대조적으로 표현하여 속리산의 특징적인 정경情景을 한 폭에 모두 그려내고 있다.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 화풍의 부흥과 명승을 화첩에 담아내는 기행사경도紀行寫景圖의 유행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2019.
김미란,「조선후기 속리산 유산기에 나타난 유람의 양상과 의미」,『한국문학과 예술』제29집,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9.
오다연,「1788년 김응환의 봉명사경과《海嶽全圖帖》」,『미술자료』제96호, 국립중앙박물관,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