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2-08-25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연락처
02-735-1110 / 9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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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분양행락도 상세보기
비단에 채색
각 129.5 ×41.3㎝
추정가
KRW  
70,000,000 - 15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대唐代의 명장名將으로 후에 ‘분양汾陽’이라는 지역의 왕으로 봉해져 흔히 ‘곽분양郭汾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곽자의(郭子儀, 697-781)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그림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궁궐그림이다. 본 작품은 세로 129.5㎝, 가로 413㎝, 10폭의 병풍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병풍의 주인공인 곽자의는 중국 섬서성陝西省 화주華州 정현鄭縣 태생의 무장武將으로 본관은 산서성山西省 분양汾陽이다. 그는 26년간 무장으로 활약하면서 북방 이민족의 침략과 당조唐朝의 존망을 위협한 내란들을 수차례 평정하고 양경兩京, 낙양落陽과 장안長安을 수복하는 구국救國의 전공戰功을 세운 전쟁영웅이다. 이에 66세 분양왕(분양군왕汾陽群王, 분양충무왕汾陽忠武王)으로 책봉되었고, 일생에 두 번이나 중서령(재상)을 역임했다. 생전에 이미 황실과 온 국민으로부터 위대한 영웅으로 숭앙받았으며, 사후 숙종의 건릉에 묘장되는 배장공신陪葬功臣의 예우를 받았다. 그리고 그 자신이 85세의 장수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8명의 아들과 7명의 사위도 입신양명했다. 특히 그의 아들 중 곽애郭曖가 765년 대종의 사위(대종의 넷째 딸 승평공주昇平公主)가 되고, 손녀는 왕비가 되어 이후 즉위한 목종(穆宗, 재위 820-824)의 모친으로 황태후가 되는 등 대대손손 당조 최고의 권문세가를 이루었다. 곽분양에 대한 이야기는 고려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에 일찍부터 전해졌다. 곽분양에 대한 관심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계속 이어져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종부터 정종까지 무려 37회나 등장한다. 그 밖에 성현(成俔, 1439-1504), 김춘택(金春澤, 1670-1717), 위백규(魏伯珪, 1727-1798) 등 많은 개인 문집까지 합하면 곽분양에 대한 기록은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전해지고 있다. 곽분양에 대한 흠모가 이렇듯 대단했던 것은 그가 당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만고의 충신이었을뿐더러 그에 걸맞게 세상 사람의 부귀와 장수, 다남 등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을 모두 누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그린 초상화 스타일의 그림은 중국과 한국에서 일찍부터 많이 그려졌다고 전한다. 그러나 곽분양 그림이 특히 그가 누린 ‘대단한 복락福樂’에 초점을 맞춰 궁궐의 길상화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조선 후기에 와서 발견된다. 곽분양의 이야기가 『곽분양행락도』라는 ‘그림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열성어제列聖御製』이다. 『열성어제』의 숙종肅宗편에는 숙종이 쓴 『제곽자의행락도사세題郭子儀行樂圖賜世子』와 『제곽분양행락도題郭汾陽行樂圖』 두 편의 글이 나오는데 ‘곽분양행락도’라는 화제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먼저 ‘제곽자의행락도사세자’의 내용이다. 제목 그대로 ‘곽자의행락도를 세자에게 주노라’하는 뜻이다. 古來完福郭爲先 子壻諸孫盡在前 圖與此障非偶爾 佇看多社又多年 絲管高堂列 子婿華筵倍 예부터 만복을 갖춘 이로는 곽자의를 제일로 여기느니, 아들 사위 손자 모두 앞에 섰구나 이와 같은 그림이 우연히 그린 것은 아니니 곁에 두고 보면서 만복과 장수를 누리리라. 거문고와 피리 높고 훌륭한 집에 열지어 있고, 아들과 사위들이 화려한 연석에서 모시고 있구나. 이 글에는 숙종이 제한 곽분양행락도의 내용과 용도가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림의 내용은 ‘아들 사위 손자들에게 둘러싸인’ 행복한 모습이며 이 그림은 그냥 뜻 없이 그린 의미 없는 그림이 아니라 ‘곁에 두고 보면서 만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이 그림을 세자에게 하사했던 것이다. 본 작품의 도상은 ‘제곽분양행락도’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絲管高堂列 子婿華筵倍’이 장면들을 요약하면 높고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곽자의가 아들과 사위와 손자들 즉, ‘많은 자식들에 둘러싸여 잔치를 벌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이 기록에 근거하면 숙종이 제한 곽분양행락도는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곽분양행락도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며, 대략 17세기에는 왕실에서 그려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곽분양행락의 주제는 궁중회화에 특히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19세기 이후에는 왕실의 혼례 때 많이 사용되었다. 3차에 걸친 간택 절차에서 최종 결정된 사람은 혼례 날까지 별궁에 머물며 절차를 준비했는데 이 별궁에 쓰였던 대표적인 병풍이 곽분양행락도였다. 현재 전해지는 조선 후기의 곽분양행락도는 보통 한가운데 곽자의가 아들과 사위들에 둘러싸여 축복을 받는 장면이 있고, 곽자의의 화려한 정원 한편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놀이하는 장면들이 그려진다. 곽분양행락도에서 곽자의 부부의 모습은 크게 3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첫째, 곽자의 혼자 등장하고 부인이 보이지 않는 형식, 두 번째는 외전과 내전 각기 다른 전각에 정좌해 있는 도상, 셋째, 궁궐의 정청 내의 곽자의 부부가 동석하여 수연을 함께 즐기는 장면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곽자의 부부가 외전과 내전으로 각각 나뉘어 각자의 전가에서 정좌해 있는 두 번째 형식의 곽분양행락도이다. 화면 중앙에는 곽자의의 축수연회가 벌어지는 외전의 정전에는 곽자의가 정좌해 있고, 화면의 오른쪽 내전에는 부인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부인의 존재감이 실린 도상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화면 오른쪽부터 살펴보면 실내에서 춤추는 듯한 자태로 공놀이를 하는 여인과 구경하는 자들, 난간에 기대어 관상觀賞하거나, 담소를 나누거나, 쟁반을 들고 걸어 다니는 자들, 머리를 빗고 있는 여인들이 있다. 마당에는 동자도를 연상시키듯 아이들이 말타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곽자의의 부인이 거처하는 내전과 곽자의가 정좌해 있는 외전 사이에는 귀중해 보이는 다채로운 다구茶具들로 차를 준비하는 여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화면 중앙 외전에는 곽자의가 아들과 사위들에 둘러싸여 축수연회가 벌어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무대 중앙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고귀한 자태로 춤을 추는 공연을 모두들 관람하고 있다. 곽자의가 앉아있는 공간 뒤에는 일월오봉도가 자리 잡고 있으며, 곽자의의 부인이 거처하는 공간에는 해학반도가 펼쳐져 있다. 그 외 누각의 공간에는 인물들 뒤에도 화조도 병풍 등을 배치하여 공간의 구성과 섬세함을 잘 표현하였다. 화면 좌측 넓게 펼쳐진 정원 연못에는 아이들이 용선龍船을 타고 노를 저으며 노닐고 있는 모습이 자리 잡고 있다. 용선에는 ’欸內一聲山水綠‘라고 쓴 깃발이 달려있으며, 아이들이 뱃놀이를 하는 모습은 현재까지 다른 곽분양행락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모습으로 다남을 의미하고 있으며, 자손들이 입신양명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곽분양은 ‘왕’이었으므로 곽분양행락도의 공간적 배경은 왕부王府, 증 ‘궁궐’이다. 궁궐의 전경은 높은 누각과 태호석 등이 상징되는데, 정교하고 화려하게 사용된 금장식들이 잘 남아 있다. 특히 연못의 난간은 투시도법을 사용하여 개성 있게 표현하였다. 화면 상단에 상서로운 구름 아래 펼쳐지는 청록산수와 계곡의 표현은 궁중회화에서 보이는 표현방식이며, 십장생도를 연상하듯 계곡 아래 사슴 두 마리가 노닐고 있어, 뛰어난 공간 구성력과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김홍남, 「한국 <郭汾陽行樂圖> 연구」, 『美術史論』34, 한국미술연구소, 2012. 류기수, 「중국(中國)과 한국(韓國)의 곽분양(郭汾陽) 도상(圖像) 연구(硏究)」, 『中國硏究』47, 韓國外國 語大學校 外國學綜合硏究센터 中國硏究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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