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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언제부터 그려졌을까? ​

2023.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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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언제부터 그려졌을까?

등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산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금강산을 꼽는다. 금강산의 전망을 압축시켜 자신만의 그려낸 겸재의 <금강전도>나 <봉래도권>,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의 곳곳을 그린 단원의 《금강사군첩》, 지우재의 《해산첩》, 도암의 <금강전도병풍>. 이외에도 이들의 영향 아래 자유분방한 필력으로 그려진 민화 금강산도 병풍들까지. 금강산은 필연적으로 우리 미술과 너무나도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금강산은 불교의 경전인 『금강반야바라밀다경』에서 빌어온 이름이다. 경전 속 금강산은 담무갈보살이 경전을 설법하며 만이천명의 권속을 데리고 머무는 이상향인데, 가사만 봐도 머릿속에 자동으로 음악이 재생되는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의 유래는 거기에 있다.

중국 당나라 때 번역된 『화엄경』에는 보살들이 머문 23곳의 산 중 동해의 금강산이 여섯 번째로 등장하며, 고려시대에 이르면 화엄경의 금강산을 지금의 금강산과 동일한 장소로 여겼다(고려 전기까지만 해도 금강산은 개골산, 혹은 풍악산으로 불렸다). 금강산 봉우리 가운데 가장 높고 우뚝한 봉우리인 비로봉 역시 『화엄경』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외에도 석가봉, 법기봉, 세존봉, 문수봉 등등 금강산은 화엄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국가였던 신라시대 이후 금강산은 불국佛國의 터전으로 그 위상이 나날이 높아졌다. 고려시대 금강산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계속되었고,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금강산을 찾았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다. 전래되는 그림 중 금강산을 그린 가장 오래된 그림이 바로 이 일화를 담고 있다. 1307년 노영魯英이란 인물이 나무판에 금니로 그린 것이며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왕건이 금강산을 찾았을 때 금강산의 주인인 담무갈보살이 빛을 발하며 왕건을 환영했다고 전한다. 그림 속 뾰족한 산등성이 옆으로 담무갈보살과 권속들이 보이고, 봉우리 사이 보살에게 엎드려 예배를 드리는 태조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뾰족한 산등성이는 금강산 산등성이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하나의 실경산수인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 사람들은 금강산에 가고자 했으며, 가지 못하는 자들은 금강산을 그려 예배하기도 했다고 한다. 중국 원나라에서도 금강산을 불교의 성지로 인식한 나머지 승려들이 방문하거나 원나라 황실에서 금강산에 불사를 크게 후원하기도 했다. 조선초 중국 사신들이 빼어난 금강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들어온 일본인들이 조선 승려의 손에다가 금강산이라고 쓰기도 했다고 하니 동아시아 속 금강산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된다.

불교의 성지이자 영산인 금강산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하에 성리학적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사대부 문인들의 수신도량으로 변모하였다고 얘기한다. 허나 결코 금강산의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금강산을 가거나 그 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은 계속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선 후기에 이르면 금강산은 겸재 정선 등 기라성 같은 천재 화가들과 만나면서 더욱 그 절경이 빛을 발하게 되며, 이후 해강 김규진·소정 변관식, 소산 박대성과 같은 근현대 화가들까지도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림을 활발하게 그렸다.

끝으로 금강산에 대해 찾아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금강산은 영어로 Mt.Kumgang 외에 Diamond Mountain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단단함 혹은 강인함이라는 뜻을 가진 ‘금강金剛’이 다이아몬드의 의미와 연결되어 번역되기 때문이다(여담으로 2018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린 금강산관련 작품 전시의 제목도 《Diamond Mountains》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덕분에 남겨진 수많은 관련 문화유산으로 봤을 때 진정 다이아몬드 마운틴, 한반도에서 가장 깊은 의의가 있는 아름다운 보물임이 틀림없다.

- 마이아트옥션, 김경인

 

[참고문헌]
이경희, 「노영의 〈아미타팔대보살도 및 담무갈보살·지장보살 현신도〉 연구 - 고려 후기 보살주처 삼성산(三聖山)의 상징 -」,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22.
이영수, 「민화 금강산도에 관한 고찰」,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회, 2000.
이태호, 「금강산의 고려시대 불교유적」, 『미술사와 문화유산』,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2012.

 

[참고도판]
​1. 겸재 정선, <금강전도>, 국보, 종이에 수묵담채, 130.8×94.5㎝,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2. 단원 김홍도, 《금강사군첩》 중 <총석정도>, 1788년, 비단에 수묵채색, 30×43.7㎝, 개인소장.
​3. 지우재 정수영, 《해산첩》, 종이에 수묵담채, 61.9×37.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4. 도암 신학권, <금강내산총도>, 1854년, 종이에 수묵담채, 60×300㎝, 제36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출품 3억 6천만원 낙찰.
​5·6 노영, <담무갈보살도>, 보물, 흑칠에 금니, 22.4×10.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7. 해강 김규진, 창덕궁 희정당 총석정절경도, 1920년 경,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8. 소정 변관식, <금강산도6폭병풍>, 1960년, 종이에 수묵담채, 각 125×32㎝, 제34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출품 3,500만원 낙찰.
​9. 소산 박대성, <금강일만이천봉>, 2014년, 종이에 수묵담채, 56.5×77㎝, 제41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출품 480만원 낙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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