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술 속 호랑이 이야기
검은색을 뜻하는 임壬과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이 만나 임인년, 검은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새해 초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나라》 전을 비롯해 호랑이를 주제로 한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건국신화를 비롯해 수많은 전설, 설화, 속담 속에 등장하는 단골 주인공이자, 공예, 조각, 회화 등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중국의 문학가 루쉰(魯迅, 1881-1936)의 말을 빌리면 “조선의 호랑이 이야기는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가장 다양하고 다채”롭다고 하기도 했다. 호랑이는 단군신화 속에서처럼 토템 혹은 신화의 대상으로 여겨지다가 수호신이라는 성격을 도교와 불교에서 강조하면서 본격적으로 굳어졌다. 비록 호랑이에 대한 이미지는 중국에서 먼저 형성되었으나, 호랑이의 이미지가 가장 구체화 된 것은 다름 아닌 한반도에서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호랑이 이야기와 관련된 예술이 넘실거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한반도는 산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고려사高麗史』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속에 호랑이 출몰 사례가 여러 차례 등장할 뿐만 아니라 태종, 세조, 영조대에는 호랑이가 경복궁에 나타났다는 소동도 있었다. 중국 속담에서 “조선 사람들은 1년의 반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 문상을 다니고 1년의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고 할 정도였으니 호랑이를 가히 한반도를 대표하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림 1. 울산 반구대 암각화 속 호랑이의 모습
좌_그림 2. 김유신 묘 십이지신상(인) 탁본, 통일신라시대, 116.5×56㎝,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
우_그림 3. 철제금은입사사인참사검, 조선시대, 長 10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를 묘사한 가장 이른 예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청동기시대에 호랑이를 포획하는 수렵 장면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일찍부터 주목받았다(그림 1). 한국 미술에 호랑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사신四神의 일원으로서며,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나 고려의 사신도 석관에서 호랑이를 볼 수 있다. 호랑이는 다른 사신인 청룡이나 주작과 달리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로서, 십이지의 하나로 등장하기도 한다. 십이지 가운데 호랑이는 동북동 방향을 상징하며 새벽 3시부터 5시 사이를 가리킨다. 십이지로서 호랑이는 통일신라시대 능묘의 십이지신상이나 석탑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그림 2). 조선시대에는 십이지로서 호랑이의 기운을 빌려 의장용품을 만들기도 했다. 음한 기운의 사귀를 물리치기 위해 호랑이의 양의 기운을 빌려 인寅이 네 번 겹쳐지는 寅年·寅月·寅日·寅時에 사인검四寅劍을 만들었는데,(그림 3) 12년에 단 한 번만 만들 수 있는 이 검은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매우 귀한 칼이자 예술품이다.
좌_그림 4. 단원 김홍도, 송하맹호도, 조선시대, 90.4×43.8㎝, 호암미술관 소장
우_그림 5. 송하맹호도, 조선시대, 76×45.5㎝, 제43회 마이아트옥션 메이저 경매 출품
조선시대는 호랑이의 인식이 가장 크게 변모한 때로 오늘날 우리가 미술 속에서 떠올리는 호랑이의 이미지는 조선시대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호랑이에 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미지를 엿볼 수 있는 시구가 있는데, 조선 후기 경주 출신 진사 최남복(崔南復, 1759-1814)이 쓴 『도와집陶窩集』에는 호랑이 그림을 감상한 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안개 속에 숨어 빛나는 문채를 이루었으나 세인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호랑이가 대낮에 여우와 이리가 횡행하므로 범하기 어려운 위엄과 권위를 보이려 힘차게 나왔다”는 글을 통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나타난다는 호랑이의 군자로서의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군자로서 위엄있는 호랑이를 표현한 가장 대표적인 미술작품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일 것이다(그림 4). 호랑이가 꼬리를 곧추세우고 앞발을 교차하면서 산에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는데 『주역周易』 속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은 명나라 후기 그려진 도상을 차용한 것으로 조선후기 화원들을 중심으로 호랑이 그림의 정형으로 자리잡는다(그림 5). 배경을 대담하게 비워내 주제를 한껏 강조해냈다. 가느다란 세필로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그린 호랑이의 털은 반짝이고 호랑이 뒤로 뻗어난 소나무의 두툼한 가지는 세월이 가득 느껴진다.
좌_그림 6. 송하산신도, 조선시대, 76×45.5㎝, 1월 마이아트옥션 온라인 경매 출품
우_그림 7. 송암복호, 조선시대, 31.5×51㎝, 간송미술관 소장
산신도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1월 온라인옥션에 출품된 <송하산신도松下山神圖>를 보면 소나무 아래에 노승이 있고 그 옆을 호랑이가 지키고 있다(그림 6). 호랑이는 노승의 곁에서 마치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는 듯 표현했는데, 이는 겉은 인자해 보이지만 호랑이의 기세를 다스리는 노승의 위신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그림은 『고씨화보顧氏畫譜』(1603)에 나타나는 그림을 범본으로 그린 것으로, 여러 불화에서도 자주 보이는 도상일 뿐만 아니라 겸재 정선의 그림, <송암복호松巖伏虎(간송미술관 소장)>에서도 보이는 도상이다(그림 7).
좌_그림 8. 설중호작도, 조선시대, 103.5×75㎝, 제43회 마이아트옥션 메이저 경매 출품
우_그림 9. 백자청화호작문호, 조선시대, 高 42㎝,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미술 속 호랑이는 이처럼 위엄있는 군자이자 신령스러운 존재로서 표현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민화 속에서 까치와 함께 등장하며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까치와 호랑이가 같이 조합된 그림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호랑이와 까치가 즐거운 소식을 의미하는 보희報喜와 동음이의어이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즉 호랑이와 까치 그림을 그려 기쁜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호작도虎鵲圖는 특히 정월 초하룻날 이른 새벽이면 집집마다 대문에 붙여 한 해 동안 집안에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번 마이아트옥션 제43회 메이저경매에 출품된 <설중호작도雪中虎鵲圖>는 일본에서 환수해 온 작품으로, 일반적인 호작도와 달리 소나무의 기둥과 가지에 하얀 색채를 더해 눈이 쌓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그림 8). 이러한 호작도가 많이 그려지던 때가 음력 1월 1일인 것을 생각하면 눈 쌓인 주변 경물을 세화에 담아낸 화공의 해학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궁중 그림에서도, 도자기에서도, 베개장식에서도, 부적판에서도 호랑이를 만나볼 수 있다(그림 9).
우리에게 호랑이는 동물 그 이상의 존재이다. 한반도를 호랑이로 표현하고, 단군신화부터 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평창올림픽 ‘수호랑’, 또 최근에는 ‘범 내려온다’의 신명나는 가락이 대유행을 끄는 등, 한국인에게 호랑이만큼 친근하게 자리 잡은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2022년, 코로나로 인해 어렵고 힘든 지금 이 순간, 호랑이가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간절하다.
[참고자료]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시아 호랑이 미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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