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는 추사 김정희, 석파 이하응 그리고 이번에 출품된 운미 민영익의 난을 최고라 하였다. 그 중 민영익의 난은 당시 교류하였던 포화, 오창석, 그리고 사숙私淑 하였던 정사초, 정섭등 중국의 화가들의 영향을 계속 받으며 화풍의 특징이 더해갔다.
이번에 출품된 운미 민영익의 난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혜란蕙蘭을 그린 작품으로, 민영익이 30세 이전에 그린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초기 시기(1878-1890년경)라 할 수 있는데, 당시엔 가학家學으로 내려온 김정희의 학품인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농묵濃墨으로 혜란蕙蘭과 그 앞에 괴석怪石을 그렸고, 난의 밑동이 단절된 듯 뭉툭한 작은 난엽을 촘촘하게 묘사하였다.
작품의 왼쪽 상단에 난엽이 이탈하는 기법 또한 그의 특징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난의 양식은 김정희, 구도나 방식, 서화의 양식적 측면은 당시 크게 유행하였던 청대 중기 화가였던 정섭(鄭燮, 1693-1765) 화풍을 따라가고 있음을볼 수 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 ‘芸楣閔泳翊’으로 관서되어 있는데, 이 것 또한 젊은 시절 민영익의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인장풀이] 雪泥鴻爪, 友天下士
[참고문헌] 김혜겸,「원정 민영익의 묵란 변천 연구」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