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일호 남계우(一濠 南啓宇, 1811-1890), 애춘 신명연(靄春 申命衍, 1809-?), 혜천 윤정(惠泉 尹程, 1809-?),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9-1892)의 4인의 그림을 담아낸 화첩이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남계우의 그림 네 폭이다. 남계우의 나비 그림은 기존의 나비 그림과 달리 다양한 나비가 등장 하여 일종의 백과사전식 그림으로도 볼 수 있다. 나비의 동세, 크기에 대한 정확한 비례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나비 의 생태적 특징까지 담아내었다. 본 작품에 수록된 남계우의 작품 네 폭 중 두 폭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화조화첩 >[참고도판1]과 유사하다. 특히 고양이가 나비를 바라보는 묘사는 아주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다음으로 네 폭의 화조영모도를 실은 신명연은 소론 사대부인 신위(申緯, 1769-1845)의 아들인데, 신위는 남계우의 재 종숙인 남정화(南正和, 1758-1828)와 교유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가까운 집안 사이의 관계를 통해 남계우와 신명 연은 관계가 돈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명연은 문인화가들에게 선호되던 몰골 담채화풍에, 직업 화가들의 구륵채색 화풍의 장점을 가미시켜 사실성과 장식성을 보완한 운수평(惲壽平, 1633-1690)1)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신명연은 산뜻 한 색채의 초화도로 새로운 화풍을 제시한 화가이다.
신명연의 동생 신명두(申命斗, 1816-1846)가 파평坡平 윤씨尹氏와 혼인하게 되면서, 윤정은 신명연과 사돈지간이 되었다. 윤정은 헌종(憲宗, 재위 1834-1849)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현령을 지냈고, 그림을 잘 그려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고 전한다. 전하는 작품이 매우 희소하여 그 가치를 더 한다.
허련은 허모란으로 불리기도 한 인물이었다. 이전 시기 문인들이 수묵으로 사군자를 많이 그린 것에 비해, 모란이 선호되 지 않은 까닭은 모란이 부귀, 화왕花王과 같은 상징성이 매우 강한 꽃이기 때문이다.
1) 운수평은 이름이 격格이고 자는 수평壽平, 혹은 정숙正叔이며 호는 남전南田 혹은 구향산인甌香散人이다. 산수와 화 조를 모두 잘 그렸고, 맑은 담채로 다양한 화훼를 섬세하게 그려서 특별히 높은 인기를 누렸다. 송대 화조화의 문인적 전통 서희徐熙-서숭사徐崇嗣의 화풍을 계승한 것으로 공인이 되면서 17세기 청나라 화단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참고문헌]
1. 고연희, 「申緯의 감각과 申命衍의 色彩」, 『한국한문학연구』75, 한국한문학회, 2019.
2. 배진경, 「藹春 申命衍 花鳥花卉畵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8. 3. 배진경, 「애춘 신명연(1809-1886)의 화훼화 연구」, 『미술사학보』53, 미술사학연구회, 2019.
4. 윤종균, 「일호 남계우(一濠 南啓宇)의 나비 그림에 대한 일고찰」, 『동원학술문집』15, 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14.
澹月溶溶隔畵樓 맑은 달빛 일렁이는 화려한 누각 건너편에
一枝香雪近簾鉤 한 가지 향긋한 흰 꽃이 주렴 가까이 피었는데
山禽似怨春歸早 산새는 흡사 봄이 일찍 돌아옴을 원망하여
竝立花間自白頭 꽃 사이에 나란히 앉아 절로 머리가 센 듯하네1)
[인문] 申命衍印, 藹春
1) 원 내현(乃賢, 1309-1369)의 <배나무 꽃 속의 백두옹 그림에 쓰다[梨花白頭翁圖]>라는 시이다.
竹外桃花三兩枝 대숲 밖에 복숭아꽃 두세 가지 피니
春江水暖鴨先知 봄 강물이 따뜻해진 것을 오리가 먼저 아네
蔞蒿滿地蘆芽短 물쑥은 땅에 가득하고 갈대 싹은 짤막하니
正是河豚欲上時 지금이 바로 복어가 거슬러 올라오는 때로다2)
[인문] 申命衍印, 藹春
2) 송 소식(蘇軾, 1037-1101)의 <혜숭의 봄 강 해질녘 풍경[惠崇春江晩 景]>이란 시이다.
碧桃枝上有珍禽 벽도화 가지 위에 진귀한 새가
調舌交交聽好音 교교 혀를 놀리며 좋은 소리 들려주네
畫出江南春意思 강남의 봄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냈으니
明年攜酒共追尋 내년엔 술을 가지고 함께 봄나들이 하고 싶네3)
[인문] 申命衍印, 藹春
3) 원 양재(楊載, 1271-1323)의 <십이 홍권자에 쓰다[題十二紅卷子]>라 는 시이다.
乙丑小春下澣, 藹春寫
을축년(1865) 10월 하순, 애춘이 그리다.
[인문] 申命衍印, 藹春
董玄翁常論畵當繇細入粗, 若遽爾作粗筆, 則恐未宜云
동현옹(동기창董其昌, 1555-1636)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그림은 응당 정 밀한 데로부터 거친 데로 들어가야 한다. 만약 갑자기 거친 필치를 쓴다면, 마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인문] 惠泉, 坡山尹程
惠泉 혜천
小痴 소치
小痴 소치
[인문] 惠泉, 坡山尹程, 景顥
[인문] 烟暝酒旗斜, 惠泉, 坡山尹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