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 김의신(雪峯 金義信, 1603-1663 이후)은 조선 중기에 활동한 서예가로 1643년 제5차, 1655년 제6차 조선통신사행에 사자관寫字官으로 일본에 건너가 필명을 떨쳤다. 본 작품은 김의신이 제6차 조선통신사행을 갔을 당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김의신은 사자관으로서 약 40년에 걸친 기간 동안 국가 행사와 관련된 임시관서에 차출되어 다양한 서사 업무를 보았다.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1637) 때는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따라가 외교문서의 필사를 전담하였으며, 이후 가례도감嘉禮都監, 녹훈도감錄勳都監, 국장도감國葬都監, 존숭도감尊崇都監, 책례도감冊禮都監 등의 도감과 찬수청纂修廳에서 일 한 기록이 전한다.
[참고문헌]
송진충, 「寫字官 雪峯 金義信의 生涯와 書風」, 『美術史學』34, 한국미 술사교육학회, 2017.
西登香爐峰 서쪽 길로 향로봉에 올라
南見瀑布水 남쪽으로 폭포수 바라보네
挂流三百丈 삼백 길 물줄기 허공에 걸려
噴壑數十裏 수십 리 골짝으로 치닫는구나
欻如飛電來 느닷없이 번갯불이 치는 듯하고
隱若白虹起 은은하게 흰 무지개가 일어난 듯하네
初驚河漢落 처음엔 은하수가 떨어지나 놀랐는데
半灑雲天裏 절반은 구름 하늘 속으로 뿌려지네
仰觀勢轉雄 올려다보니 형세가 갈수록 웅장하니
壯哉造化功 장대하여라 조물주의 능력이여
海風吹不斷 바다 바람은 불어와 끊임이 없고
江月照還空 강의 달은 비출수록 도리어 고요하네
空中亂潨射 공중에서 물줄기 어지러이 쏘아대어
左右洗青壁 푸른 벽을 좌우로 씻어 내리니
飛珠散輕霞 흩날리는 진주는 노을 속에 흩어지고
流沫沸穹石 흐르는 포말은 바위에서 부서지네
而我樂名山 나는 본래 명산을 좋아하여
對之心益閒 마주하니 마음이 더욱 느긋하네
無論漱瓊液 맑은 물에 양치질은 물론이고
且得洗塵顏 속세에 찌든 얼굴도 씻어야지
且諧宿所好 이야말로 나의 오랜 바람을 이룸이라
永願辭人間 오래도록 인간세상 하직하고 싶네1)
右廬山瀑布 이상은 여산폭포
1) 당 이백(李白, 701-762)의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라는 시를 쓴 것이다.
明月出天山 밝은 달이 천산에 솟아
蒼茫雲海間 아득히 구름 사이에 떴는데
長風幾萬里 긴 바람은 수만 리 불어와
吹度玉門關 옥문관을 불어서 지나가네
漢下白登道 한나라는 백등의 길로 내려왔고
胡窺靑海灣 오랑캐는 청해의 물굽이를 엿보는데 由來征戰地 예로부터 전쟁이 벌어진 곳에선
不見有人還 살아서 돌아온 사람 보이지 않네
戍客望邊色 수자리하는 객은 변방의 풍경 바라보다 思歸多苦顔 돌아가고픈 심정에 얼굴을 찌푸리는데 高樓當此夜 높은 누각에서 이 밤을 맞으니
嘆息未應閑 탄식에 겨워 한가함 누릴 길 없네2) 右關山月 이상은 관산월
2) 당 이백의 <관산월關山月>이란 시이다.
寶劍雙蛟龍 보검은 한 쌍의 교룡이라
雪花照芙蓉 눈 같은 광채가 연꽃을 비추는데
精光射天地 시린 검광이 천지를 비추면
電騰不可衝 날뛰는 번개도 맞서지 못하리
一去別金匣 한 번 금칼집을 떠나면
飛沈失相從 날거나 가라앉아 서로 만나지 못하고
風胡滅已久 풍호자는 사라진지 벌써 오래이니
所以潛其鋒 그 때문에 칼날이 감추어졌네
吳水深萬丈 오나라 강은 천길 만길 깊고
楚山邈千重 초나라 산은 천 겹으로 아득하여도
雌雄終不隔 암컷과 수컷이 끝내 떨어지지 않듯
神物會當逢 신령한 물건은 마땅히 만나야 하리3)
3) 당 이백의 <고풍古風>이란 시이다.
北闕休上書 대궐에 글 올리는 일 그만두고
南山歸弊廬 남산이라 초라한 집으로 돌아오니
不才明主棄 재주 없어 밝은 임금께 버려졌고
多病故人疎 병이 많아 친구들도 멀어졌네
白髮催年老 흰 머리는 늙음을 재촉하고
青陽逼歲除 봄볕도 한 해 끝으로 다가오네
永懷愁不寐 오랜 생각으로 수심에 잠 못 이루는데
松月夜窓虛 소나무 사이 달빛만 밤 창을 비춰주네4)
4) 당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세모에 남산으로 돌아오다[歲暮歸南山]>라는 시이다.
湖上新正逢故人 호숫가에서 새해 초에 친구를 만나니
情深應不笑家貧 우정이 깊어 가난한 집을 비웃지 않네
明朝別後門還掩 내일 아침 이별한 뒤에 대문을 다시 걸면
脩竹千竿一老身 천 그루 긴 대숲에 늙은 이 몸만 남으리5)
5) 당 엄유(嚴維, ?-?)의 <새해 초에 황보 시어가 찾아옴이 기뻐서[歲初喜皇甫侍禦至]>라는 시를 쓴 것이다.
乙未季冬下浣 雪峯書 을미년 하순, 설봉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