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일본의 유명한 도예가인 키타오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 人, 1883-1959], 하마다 쇼지[浜田庄司, 1894-1933]가 오랫동안 소 장해 온 명품의 편병이다. 동체의 양면을 편평하게 하고 선각線刻 으로 화문을 새긴 후 일부 꽃잎에는 백토를 닦아내 박지하여 나타 내 대조를 이루며 측면에는 사엽화문四葉花文을 선각하고 꽃잎 한 부분을 백토를 닦아내 백토와 대비된 특징을 이루고 있다. 비교적 긴 목에 구부는 벌어지고 굽다리는 넓고 모래받침 자국이 나있다. 녹갈색의 유가 시유되었으며 오랜 세월 화병으로 사용되어 다채로 운 색깔을 띠고 있다. 조선 초기 문화의 전성기인 15세기 후반 성종 연간(재위 1470-1495) 작품으로 전북 고창 수동리, 혹은 용산리요 龍山里窯에서 제작된 특별한 작품으로 보인다.
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윤용이
본 작품은 1934년에 일본에서 발간된『키타오오지가 소장 고도자 전람회北大路家蒐藏 古陶磁展覽會』 도록을 시작으로 1976년『陶磁大系 第三十卷 三島』 등 유수의 도록에 수록되어 기록으로만 볼 수 있 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으로부터 환수되어 국내에서는 제54회 마이아트옥션에서 처음으로 공 개된다. 본 <분청사기박지화문편병>은 다른 분청사기와는 달리 보기 드물게 약 400년의 역사 속 역대 유명 소장가로 전세된 진귀한 예술품이다.
상자 뚜껑 상면에는 ‘空中 德利 華入’ 즉 일본 막부 시대의 유명도예가 혼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悅, 1558-1637]의 손자 혼아미 고호[本阿弥光甫, 1601-1682]의 소장 화병이라는 상서箱書가 있다. 이 글로 미루어보아 도쿠리[徳利]라는 명칭의 주기酒器로 불렸으며, 하나이레[華入] 즉, 꽃병의 용도로도 사용 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뚜껑 내면에는 역시 일본 막부 시대의 유명한 고필 감정가인 코히츠 료츄 [古筆了仲, 1656-1736]의 소장 내역과 시 한수가 적혀 있다. 그리고 상자 측면에는 키타오오지 로산진과 하마다 쇼지의 글이 있는데 모두 혼아미 고호의 소장품이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분청사기 편병은 전면과 후면에 가득 채운 음각의 화문이 인상적이 다. 약간 벌어진 구연에서 기측선이 약간 사선을 그리며 내려오다가 동 체에서 둥글게 부풀어 오른다. 우리나라의 분청사기를 일본에서는 흔히 미시마테[三島手]라고 부르며 일본의 독자적인 미감을 투영하기도 했 다. 이것은 무로마치시대부터 이어져 온 다도의 역사에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옛 다인들이 선택한 작품에 한하여 ‘미시마’라고 지칭하 였으나 현재는 그 지칭 범위가 확대되었다. 일본에서는 선각을 쵸하케메 [彫刷毛目], 쵸미시마[彫三島]라고 부르며,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지금까 지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이 편평은 둥근 조형미가 강한 순수함을 갖고 있어, 여유로운 형태 미가 돋보이다. 동체부에 시문된 선각은 담백한 선으로 이루어져 개성 있는 문양을 이루고 있다. 편병의 유색은 오랜 시간 전세 되어 오면서 쓰 임에 따라 변화된 색의 미감을 갖고 있으며, 이도 다완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정취가 담겨있어 특별함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한영대, 『조선미의 탐구자들』, 학고재, 1997.
田中豊太郎, 『陶磁大系 第三十卷 三島』, 平凡社, 1976.
*혼아미 고호[本阿弥光甫, 1601-1682]의 글
空中 德利 華入
혼아미 고호는 에도시대 전기에 살았던 도검 감정, 연마 및 세정사이자 도예가, 다인, 화가이며 호는 구츄사이[空 中斎]다. 조부는 혼아미 고에츠이다. 고에츠가 세상을 떠 날 때까지 다도와 향도, 서화, 도예, 조각을 두루 익혔다. 특히 가업인 도검 감정의 실력이 뛰어났고, 공예는 조부 의 유풍을 이어받았다. 도예에서는 라쿠야키[楽焼]외에 도 시가라키야키[信楽焼]를 주특기로 하여 그의 호를 따 ‘구츄시가라키야키[空中信楽焼]’라고 칭하기도 했다.
*코히츠 료츄[古筆了仲, 1656-1736]의 감정서
本阿弥空中斎光甫
箱盖書付けから德利
華入八字
一入筆相遠無良也
庚申八月
古筆了仲
혼아미구츄사이고호
상자의 윗면에 도쿠리 하나이레라고 써있다.
8자로 글을 남긴다.
‘한 번 쓴 글씨는 서로가 멀리 있어 좋을 것이 없구나. ’
1680년 8월
코히츠 료츄
[인문] 丙川
코히츠 료츄는 에도시대 전기에서 중기의 고필 감정가이다.
코히츠가 2대 료우이[了任]의 양자가 되어, 3대를 잇는 사람이며 소우가[宗 家]의 료우민[了珉]과 함께 막부에 사용되어 사찰봉행지배寺社奉行支配의 고필견古筆見이 되었다. 81세에 사망하였으며 본성은 시미즈[清水水]이다. 성은 히라사와[平澤], 이름은 스나오[守直], 통칭은 무베[武兵衛]라고 한다.
*키타오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의 글과 1934년 발간된 그의 소장품 도록 中
九三九
高麗扁壺
空中箱
키타오오지 로산진은 쇼와시대[昭和時代, 1926- 1989] 전반에 활동한 예술가이자 미식가이다. 본 명은 키타오오지 후사지로[北大路房次郎]로, 서예 가이자 도예가,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다. 로산진은 1930년대 발행된 『호시가오카星が丘』에 자신의 작 업을 홍보하면서 도자 연구가로도 인정받았다.
*하마다 쇼지[浜田庄司, 1894-1933]의 글
拾貳番
高麗花生
空中箱書
하마다 쇼지는 근대 일본 공예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20세기의 대표적 공예 운동의 하나인 일본 민예운동의 도예가였던 그와 가와이 간지로[河井寬次 郎, 1890-1966], 도미모토 겐키치[富本蹇吉, 1886-1963] 등 공예거장들의 감각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수집한 다수의 조선 공예품 을 접하고 나서 훨씬 세련되어졌다. 하마다 쇼지는 1919년 조선에 다녀가기 도 하였으며, “조선의 도자에서는 형태에 가장 감탄한다…. 살아있는 듯 얼기 설기하고, 자연적인 불균형적 요소에서 오는 독특한 미가 있다.”라는 말을 남 기 정도로 조선의 기형에 심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