壹畵之寶 한 폭의 그림 같은 옥새玉璽
인장印章은 중국에서 전래 되어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삼국시대에는 국새國璽나 관인官印 위주로 인장을 사용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인부랑印符郎이라고 하는 왕부王府의 인신印信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인私印의 사용이 일반화 되었다. 고려시대 인장은 개성 부근에서 다수 출토되어 개성에 거주하던 귀족 및 중앙 관료들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본 작품은 인신印身 위에 서수가 앉아 있다. 서수는 음각으로 얼굴과 털의 표현이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다. 인면을 제외한 인뉴와 인신에는 담백한 청자유가 시유되어 있어 형태미를 돋보이게 한다. 서수는 신성하고 권위를 갖춘 영물靈物로 집정자의 권위를 상징하거나 시대에 따라 종교·정치적 관점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본 작품은 인장이라는 용도와 함께 장식적 성격까지 갖추어 완상玩賞의 목적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영희, 「陶製印章開發에 관한 연구 : 十二支像을 中心으로」,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도자공예전공 석사논문, 1990.
호영아, 「고려시대 상형청자 연구 : 상형청자의 종류와 시대적 변천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2014.
[수록처]
포스코미술관, 『天機漏洩 高麗翡色』,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