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다채로운 화면으로 구성된 여섯 폭의 병풍이다. 1폭에는 학과 꽃가지, 2폭에는 나무와 원숭이, 3폭에는 소나무와 원숭이, 4폭에는 버드나무와 학, 5폭과 6폭에는 꽃가지와 대나무가 함께 있는 새가 그려졌다. 여백을 통한 공간감의 활용이 두드러지며, 각 폭에 그려진 새와 원숭이의 섬세한 표현이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에는 수묵 위주의 화조영모도가 다수 제작되었다. 표현 방식이나 소재에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으로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사고방식을 직·간접적으로 담아내는 화제畫題로 활용되었다. 화조영모도는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비는 기복祈福의 의미, 귀신을 쫓는 벽사辟邪의 용도로 제작되어 조선 후기까지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마지막 6폭에는 매와梅窩라는 인장이 찍혀있는데 이는 조당(趙棠, 1689-1754)의 호로 파악된다. 그의 자는 우경友卿, 호는 매와梅窩이며 숙종(肅宗, 1674-1720) 15년부터 영조(英祖, 1724-1776) 30년까지 살았다. 매와공언행록梅窩公棠言行錄을 보면, 그는 학문에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한다. 또한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祏, 1686-1761)과의 교유관계도 드러나는데, 조영석이 의령현감宜寧縣監으로 있을 때 그림을 잘 함으로써 해당 관서에서 상명上命을 받들어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기에 이에 매와공 조당이 시詩로서 깨우쳐 이르기를 “도道를 놓치고서 부르는데 나가는 것이 반드시 충忠이 아니며 신하된 자는 진퇴進退가 분명해야 마음이 아름다운 것 세상과 조정이 걱정스러워 상심이 전도顚倒된 무리들을 배척排斥하기로 저 하늘에 호소呼訴해 보려나” 하였고 조영석이 화답하기를 “효자孝子는 미루어 나라에 충신忠臣되고 적은 신하의 마음 주상主上을 향하건만 비록 일이 있어도 가기 어려운 곳인지라 단지 뜬 구름 하늘을 어둡게 가리울까 두렵구나” 하였다.
본 작품은 조영석의 작품과 비교 하여 보는 재미를 준다. 3폭의 원숭이가 앉은 소나무의 표현은 조영석의 <송학도>의 소나무 표현과 흡사하다. 얇고 작은 가지들을 그린 뒤 그 주위를 옅은 농담으로 장식한 모양이다. 4폭은 조영석의 작품인 <말징박기>와 조영석의 작품으로 전하는 <탁족도>와 비슷한 점이 있다. 특히 나무의 표현이 주목되는데 끝부분이 불규칙적으로 끊겨있는 나뭇가지들과 나무줄기 군데군데 보이는 깊은 옹이의 표현, 늘어진 나무 줄기와 작은 잎들의 표현이 유사하다. 본 작품의 화풍과 시기, 특징적인 표현들로 미루어 보아 조영석이 그림을 그리고 조당이 소장인을 찍은 것으로 생각 된다.
[참고문헌]
권슬기, 「조선시대 영모화에 나타난 회화성 연구 : 이암과 변상벽을 중심으로」, 경상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석사학위논문, 2020.
송두미, 「朝鮮後期 花鳥圖 硏究 : 새의 묘화법을 中心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예술문화학과 석사학위논문, 2011.
[참고도판]
1. 조영석, <송작도 松鵲圖>, 조선, 46.5×41㎝, 개인소장.
2. 조영석, <말징박기>, 조선, 36.7×25.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동원 2307).
3. <傳조영석필 탁족도傳趙榮祏筆濯足圖>, 조선, 205×6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증 9929).
[인문] 梅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