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匡輔國崇祿大夫弘濟尊者四溟堂大禪師之眞
대광보국 숭록대부 홍제존자 사명당 대선사지진
甁錫空山索然若枯木死灰何其靜也一日秋初而起所賤如麻何其勇也吾不信佛氏之有_而無用也
정병淨甁과 석장錫杖을 지닌 채 텅 빈 산에 머물 때, 그 쓸쓸한 그 모습이 마치 고목이나 죽은 재와 같으시다. 어찌 그리도 고요하셨던가. 어느 초가을날 칼을 잡고 일어서서, 적을 베는 것이 마치 삼을 베는 것과 같으셨다. 어찌 그리 용맹스러우셨던가. 불씨佛氏들은 체體만 있고 용用은 없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본 출품작은 사명 유정(四溟 惟政, 1544-1610)의 진영眞影을 그린 것으로 조선 후기 유행하였다. 사명 유정은 임진왜란 때 의승병義僧兵으로 참전하여 왜적 토벌에 앞장섰으며,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포로 송환에 힘쓰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사명 유정은 17세에 신묵화상信_和尙에게 출가하여 18세에 봉은사奉恩寺에서 선과禪科에 합격하였다. 사명 유정은 49세 되던 1592년 유점사楡岾寺에 모리 가쓰노부(毛利勝信, ?-1611)의 침략군과 조우하여 그들을 타일러 돌려보냈지만 계속된 침략으로 인해 150명의 승병과 함께 참전하였다고 전한다.
본 작품의 경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대광보국숭록대부홍제존자사명당대선사지진大匡輔國崇祿大夫弘濟尊者泗溟堂大禪師之眞>과 완전히 같은 화면을 구성을 이루고 있어 이를 모본으로 하여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두 작품 모두 화면 좌측 상단에 나타난 풍원군 조현명(豊原君 趙顯命, 1690-1752)의 찬문이 있는데, 내용을 통해 통도사 본을 보고 후대에 제작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예로 ‘斫’자를 ‘所’로 잘못 적은 부분들이 확인된다.
[참고문헌]
박주영, 「四溟 惟政(1544-1610) 眞影 硏究」, 고려대학교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전공 석사학위논문, 2018.
[참고도판]
<대광보국숭록대부홍제존자사명당대선사지진>, 조선 후기, 122.5×80㎝, 비단에 채색,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통도사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