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야삼경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화가 수화 김환기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 화가 수화 김환기(1913-1974)
“김환기가 도자기를 사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로...
백자 항아리 중 일제 때 둥글다고 해서
마루쓰보圓壺라고 불렀던 한 항아리를 특히 좋아해
그가 달항아리라고 이름 붙였다”
- 고미술상 우당 홍기대(1921-2019), 『조선백자와 80년』 中
“아주 이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
-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최순우(1916-1984), 『韓國美 한국의 마음』(1980) 中
현대 도예의 지평을 연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한국을 찾아와
달항아리에 매료되었고 1935년 한국에서
달항아리를 구입했다. 조선 도자기에
심취했던 그는 달항아리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
- 도예가 버나드 리치 (1887-1979)
“오만한 풍정이 아니라 쓸쓸한 자태”
-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 (1889-1961)
“1955년 30대이던 재일동포 사업가 정조문은
일본 교토의 산조 어느 갤러리 진열장 앞에서
유리창 너머 놓여있던 백자 달항아리를 보고 넋을 잃었다.
가격은 200만 엔. 당시로서는 집 두 채 값이었다.
고향이 그리웠던 그는 주저없이 12개월 할부로
백자 달항아리를 손에 넣었다.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이 항아리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조선백자’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어요.
이건 조선백자 중에서도 아주 훌륭한 도자기인데,
이보다 더 훌륭한 도자기는 없을 거라고 했어요.
- 고려미술관 설립자 정조문(1918-1989) 생전 육성
달항아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담아 내어 주는 한국 도자의 얼굴이다.
“겸손의 미덕에
최상의 경의를 표하는 작품”
- 소설가 알랭 드 보통 (1969 -)
[수록처]
조선관요박물관, 『조선도자수선』, 2002, 도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