謙齋 겸재
[인문] 元白
사계절의 산수를 그리는 전통은 이미 중국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등장하고 있다. 이 중 설경산수雪景山水의 경우 독자적으로 조성되는 경우도 많았으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왕유(王維, 699-759)가 지은 것으로 전하는 『산수론山水論』에서는 동경산수冬景山水를 그리는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동경은 땅을 빌어 눈을 표현한다. 나무꾼이 땔나무를 진 모습, 고깃배가 강언덕에 기댄 모습, 물이 얕고 모래는 평평한 풍경을 그린다.”라고 하였다. 명대의 경우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의 <관산적설도關山積雪圖>의 발문에서 “…설경산수화를 많이 그린 것은 대개 이것을 빌려 그들의 고고하고 속세를 떠난 심의를 기탁하고자 했던 것이다.”라고 하여 설경산수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본 출품작은 겸재 정선의 작품으로 원경에는 X자 구도의 설산을 표현하고 그 사이 중턱에 가옥을 그렸으며 전경에는 이를 향해 가는 듯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하단에는 강물이 표현되어 있으며 강물 상단 좌측으로 정선의 설경산수에 주로 등장하는 가지가 표현된 침형세수針形細樹 형식의 나무 3그루가 있다. 그 우측으로는 6마리의 나귀와 2명의 인물이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행자들은 산수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모티프이지만 설경산수의 경우 그 의미가 사뭇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이 원경에 있는 가옥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겨울철 추위를 뚫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은 선비의 의지로 보여지기도 한다. 이처럼 설경을 배경으로 행자들을 그린 형식의 작품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관산적설이라는 주제를 통해 주로 등장하고 있으며 정선의 작품에서도 마을 등을 향해 가는 행자를 그린 형식으로 종종 확인된다.
[참고문헌]
민길홍, 「朝鮮後期 雪景山水畵」, 『미술자료』70·71, 국립중앙박물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