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년(壬戌年, 숙종 8년) 12월에 통신사가 일본으로 보낸 외교 문건으로 조선통신사의 정사正使와 부사副使가 일본 측에 무사히 귀국했음을 알리는 문서이다. 1682년 통신사 윤지완(尹趾完, 1632-1718 : 통신정사), 이언강(李彥綱, 1648-1716 : 부사), 박경후(朴慶後, 1644-1706 : 종사관)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다. 관백 원가강에게는 아우가 둘 있었는데 좌마두左馬頭와 우마두右馬頭였다. 좌마두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가강이 임종할 때에 우마두를 세우라고 유명遺命하였는데, 이때에 우마두가 사위嗣位하여 강길綱吉이라 개명하고, 그의 아들 덕송德松을 세워 저사儲嗣로 삼았다.
신유년(1681) 가을에 대마도 차사 등일정藤一政이 와서 경하사慶賀使를 요청하므로, 윤지완을 통신사로 차정하여 가서 빙문聘問토록 하였다. 이언강을 종사관으로 삼았으나 임술년 정월에 4품직에 승직되었기 때문에 올려서 부사로 삼고, 박경후를 종사관으로 삼았다. 6월에 출발하였다가 10월에 돌아왔다.
일본 국왕을 귀대군貴大君으로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