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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12일 군대를 마치고 그 해 6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소위 환상적인 나날들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전국이 축제장을 방불케하고 일본이 이루지 못한 4강 신화의 주역들과 함께 온 국민이 즐거워했다.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로 복학한 지 한 학기가 지나 2003년 1월 겨울 방학이다. 고서화 전문 공갤러리를 운영하고 계셨던 아버지께서 나에게 일본 출장을 가자고 하셨다. 나로서는 난생처음 간사이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오로지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 학예실장 출신인 요시다 히로시 선생을 만날 생각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전에 요시다 선생께서 보내주신 작품사진 그 원본을 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이름하여 겸재 정선의 <연강임술첩>!!
소동파(1036-1101)가 1082년인 임술년에 적벽부를 만든 것을 기념하고자, 한 갑자 60년마다 임술년이 돌아오면 중국이나 조선의 문사들이 적벽부 시를 읊조리며 시회를 가졌던 행사가 있었다. 이때는 1742년, 즉 11갑자 지난 1742년에도 행사가 열렸는데 가히 거창하였다.
주최자는 경기도 관찰사인 홍경보 그리고 참석자로는 연천군수 신유한 그리고 양천현령 정겸재다. 연천군수 신유한은 이 행사를 위하여, 관할하던 영내에 연천강을 섭외하고 커다란 선박을 준비하였으며, 양천의 현령인 겸재 정선은 이 모든 행사의 모습을 생생히 글과 그림으로 묘사하여 기록하였다. 경기관찰사 홍상공은 남겨진 첩에 화제를 달아 그 뜻을 더하였다. 게다가 당시 이 첩은 화첩의 원형을 그대로 갖춘 모습이었다.
우화정 아래에서 배를 띄우며 행사를 시작하는 우화등선 1폭과 곰소라고 불리는 웅연으로 시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3인을 수많은 군중들이 횃불을 밝혀 마중 나와있는 모습이다. 바로 웅연계람 1폭이다.
영조시대 권력과 문학과 미술이 만나 이루어낸 블록버스터이다. 참고로 기록에 의하면, 제작될 당시에는 경기관찰사 홍경보, 연천군수 신유한, 양천현령 정선을 위해 각각 1본씩 총 3본을 제작하였다. 기존에 한국에 1본이 있었고, 일본에서 찾아낸 것이 이미 20년 되었다.
이제는 어디선가 보관되었을지 모르는 연강임술첩의 마지막 1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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