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癸未年에 제주목사濟州牧使 이형상李衡祥이 경주慶州로 보낸 답장 편지
月城 大牙 월성 대아
濟營追謝 제영추사
癸未 衡祥 頓 계미 형상 돈
이 답장 편지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듬해에 작성된 것이다. 제주에 유배된
오시복吳始復을 변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숙종29년(1703), 그의 나이 51세에
쓴 친필이다.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은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0대손이
다. 호는 병와甁窩. 29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호조좌랑·청주목사·동래부사·제주목
사를 지냈다.
1702년에 제주목사가 되어 화공畫工 김남길金南吉을 시켜 제작한 기록화첩이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이다. 이는 그가 부임한 가을에 순력한 사실과 제주도
에서 가진 다양한 행사를 묘사한 것으로 현재 보물 제65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는 목사 재임 중에 삼성사三姓祠를 짓고, 신당神堂 129개를 모두 불태웠다. 사찰
寺刹을 훼철하는 등 음사淫祀를 개혁하였다. 또한 제주 해녀들이 나체로 잠수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해녀복을 고안, 제작해 착용시켰다. 이듬해에 제주에 유배된 오시
복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삭탈관작되었고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