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초화문 청화백자靈芝草花文 靑畵白磁는 기면에 청화 안료로 공간을 일정하게 구획하고, 그 안에 도안화된 영지 초화문을 장식한 것이다. 명대 선덕연간 관요양식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청대 이후 경덕진景德鎭 민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조선의 경우 왕실내지 관청과 연관되는 장소에서 중국산의 소비가 빈번했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산 영지초화문 청화백자는 관요인 분원리요를 중심으로 생산 되며 가장 고급의 소비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한양에서 폭넓게 소비되어 당시 조선인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실물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