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무수(徐懋修, 1716-1785)의 자는 중욱仲勖·욱지勖之, 호는 수헌秀軒이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서종 태徐宗泰, 부친은 좌의정을 지낸 서명균徐命均이다. 형 서지수 (徐志修)가 영의정을 지냈으므로 삼대에 이어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으로, 그의 손자 서당보(徐堂輔)도 영의정을 지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는『완당집阮堂集』에서 그가 백하 윤순(白下 尹淳, 1680-1741)의 제자라고 썼고 영의정을 지낸 경산 정원용(經山 鄭元容, 1783-1873)은 그의 저서『수 향편袖香編 논제필가서법論諸筆家書法』에 “서무수의글씨는 반쯤 갠 봄날 은일자隱逸者가 채소밭을 가꾸는 듯하다”고 논평 하였다. 이 작품은 도연명陶淵明과 두보杜甫의 시를 그 특유의 필의로 쓴 필첩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진체晉體’, 즉 ‘왕희지 체’의 대가로 알려진 서무수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등왕정자(藤王亭子) 두보(杜甫)
君王臺榭枕巴山 군왕의 누각은 파산(巴山) 산허리를 베고 있고
萬丈丹梯尙可攀 만길 붉은 계단 여전히 오를만하네.
春日鶯啼修竹裏 봄날 꾀꼬리 긴 대숲에서 울고 있는데
仙家犬吠白雲間 선가(仙家)의 개 흰 구름 사이에서 짖누나.
清江碧石傷心麗 맑은 강 푸른 돌은 서럽도록 곱고
嫩蕊濃花滿目斑 어린 꽃술 흐드러진 꽃이 눈에 가득 아롱지네.
人到于今歌出牧 사람들은 지금까지 부임한 수령들을 노래하고는
來游此地不知還 와서 노닐다 돌아갈 줄 모른다네.
庚子 冬 書 勖之 경자(1780)년 겨울에 욱지(勖之)가 쓰다.
[인장풀이] 勖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