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마이아트옥션 경매

일시
2024-12-05 16:00
장소
마이아트옥션하우스 본관 B1
연락처
02-735-1110 / 9938
* 응찰은 프리뷰 기간 중 작품 상태를 모두 확인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 기타 자세한 공지사항은 하단 'NOTICE' 참조
확대보기
48
표피도 7폭병풍 상세보기
종이에 수묵담채
각 176×51㎝
추정가
KRW  
700,000,000 - 1,200,000,000
USD  
JPY  
작품문의
T. 02-735-1110 / 9938 F. 02-737-5527 M. myart@myartauction.com
작품설명
예로부터 동양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전해져왔다. 호랑이 가죽은 그 무늬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잡귀를 쫓아버리는 신통력까지 지녔다고 믿어 사람들이 호랑이 가죽을 애용하였다. 역사 속에서 보면 일찍부터 호피는 대개 조정에서 교역품이나 외국 사신들에게 보내는 예물, 또는 신하에게 내리는 호피 방석인 아닷개阿多叱介를 하사품으로 사용되었는데, 소요되는 양이 많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는 호환虎患보다 호랑이 가죽 공납이 더 가혹한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호랑이는 몸에 줄무늬가 있는 반면, 표범은 원형의 점무늬가 있어 서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표범을 그리고도 호랑이그림虎圖이라 불리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호표虎豹를 따로 구분 없이 부르거나 ‘범’으로 통칭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실제 궁궐에서 시험을 본 후 신하에게 하사되는 예를 보면 1등은 말, 2등은 표피, 3등은 호피를 하사하는 모습에서 표피를 호피보다 귀한 것으로 인식하였다고 할 수 있다.1) 또한 호피는 두껍고 거칠어 덮개나 깔개 정도로 사용된 것에 반해 표피는 무늬가 아름답고 촉감이 부드러워 호피보다 인기가 더 높았다. 선적인 느낌이 강한 호피보다는 표피의 반점이 장식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19세기 초에 집필된『만기요람萬機要覽』에서는 표피의 값이 호피의 값보다 훨씬 높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진짜 호표 가죽은 매우 귀했기 때문에 호표 가죽을 그리는 현상이 조선후기 민화의 유행과 함께 나타났는데, 현재 남아 있는 몇 점의 호·표피도 병풍을 통해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표피 그림은 표범의 가죽을 본 따 터럭 한 올 한 올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그 무늬를 묘사하기가 상당히 어려워 그림에 능숙한 화가가 아니고는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따라서 작품 또한 몇 점 남아 있지 않으며, 대개 8폭 내지 10폭의 병풍으로 그려져 무관 출신의 사랑방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소장했던 귀중한 그림에 속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호랑이나 표범과 관련된 예술이 존재하지만, 호·표피도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민화의 화목畵目 가운데 표피도는 세계문양사·미술사에 독창적인 면에서 큰 공헌을 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본 출품작은 1974년 에밀레박물관『韓虎의 美術(1974)』전시에서 소장품 으로 공개되었다. 에밀레박물관(現 조자용 민문화관)의 관장이었던 조자용 (趙子庸, 1926-2000)2)이 민화를 처음 접했던 1960년대 말에는 민족정신과 문화에 대한 자각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였다.3) 조자용은 전통적이고 고유한 서민문화의 존재와 가치 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인식을 바꾼 선구자와 같은 인물이다. 1969년 조 자용은 일본 민예관에 들러『민예』 지에 썼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한국 민화에 관한 글 을 읽고 민화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 고 결심하였다. 민화라는 용어를 공 식적 사용하기 시작한 것에 대한 김 철순의 의견을 살펴보면 그의 논문 「한국 민화의 주제와 정신」에서 ‘조자용은 한국 민화에 관하여 제일 먼저, 가장 많은 글을 썼고 여러 가지 책을 펴냈다’고 밝히고 있다. 조자용이 한국 민화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 하게 된 것도 이런 시대적 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자용은 많 은 민화작품 중에서도 이 표피도를 가장 대표작으로 내세워『韓虎의 美術 (1974)』전시도록의 표지 전면을 할애하였다.[작품수록 도록 2] 이후 이 표피 도는 일본으로 귀화한 근대 1호 골동품 상인이자 컬렉터인 이영개(李英介, 1906-?)의 소장품이 되었고 그의 친족을 통해 약 반세기 만에 고국으로 돌아 오게 된 것이다. 당시 조관장 곁에서 학예관으로 재직 중이던 현 가회민화박물관 윤열수 관장은 이 표피도가 1972 년 에밀레박물관 조자용 관장이 김포공항에서 국외반출이 불허된 압수 작품을 구매하였는데 1점은 사전에 판매 견본으로 이미 밀반 출되었기에 한 폭을 기다리는 7폭의 병풍으로 화제가 되었던 실물 이라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병풍은 미사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붓 자국을 그대로 살려 털의 질감을 표 현하는 동시에 먹의 농담만으로 등 쪽과 배 쪽의 명암 차이를 완벽하게 표현하 여 마치 표범의 가죽을 실물로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전 문 화원이 자신감 넘치는 빠른 달필達筆로 그린 걸작이어서 한국 민화의 대표 급으로 지정할 대상을 찾는다면 규모, 필선, 보관 상태 등에서 나무랄 데 없는 본 작품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Condition
 
추천작품
top

현재 진행중인 경매가 없습니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