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T102. 백자음각‘黃’명발, 高 7.3 口徑 15.5 底經 6.5
모두가 알다시피, 고려(高麗, 918-1392)에서 조선(朝鮮, 1392-1910)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정치, 경제, 사회질서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국가의 수공업 지배형태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며, 고려 후기 이래 소所를 통한 수공업 지배는 군현郡縣을 통한 공납 지배의 형태로 변화하였습니다.
이후 1460년대 후반 경기도 광주에 관요官窯가 설치됨으로써, 다시 체제상의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관요는 내용內用 및 국용國用의 백자白磁를 전담하여 생산하는 사옹원司饔院의 사기소沙器所로, 그 운영에 필요한 인력 및 재정을 중앙정부가 일원적으로 전담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관요 설치 이전에 제작된 백자에는 관사명官司名과 지명地名이 주로 인각印刻 기법으로 새겨집니다. 반면 관요가 설치된 이후에는 사진의 ‘黃’명처럼 주로 유면음각釉面陰刻 기법이 사용됩니다. ‘黃’명은 ‘天·地·玄·黃’명 중 하나로 이 네 가지 명문은 ‘大·中·世·處’명과 함께 관요 설치 이후 백자에 표기되는 대표적인 명문입니다.
‘天·地·玄·黃’명 백자는 주로 갑번(甲燔,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 관요에서 갑에 넣어 번조한 고급 사기그릇을 굽던 일)으로 제작되었으며 전반적인 질이 양호하여 당시 관요백자의 우수한 제작 수준을 보여줍니다. 또한 관요 설치 이후부터 1560년까지 제작되어 편년자료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천자문의 자호로 화포의 크기를 구분하거나, 토지를 구분하는 등 공납물의 수량 파악과 같은 행정 실무의 전반에 걸쳐 적극 활용 하였습니다. 이는 한자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이 가능한 순차 기호로 ‘一·二·三·四’와 같이 획으로 변조가 쉬운 자호 대신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天·地·玄·黃’ 명문의 의미에 대해서는 어고御庫가 자호별로 구분되어 백자를 수납하기 위함이라는 접근, 백자의 제작과 연계된다는 접근, 사용처의 구분이라는 접근 등이 있습니다.
<백자 ‘天·地·玄·黃’명발>(국보 286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그러나 ‘天·地·玄·黃’명 백자가 한 건물지에서 모두 출토되어 사용처의 구분으로 보기 어려우며, 관리책임자인 4명의 제조를 의미하는 자호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명문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효율적인 백자의 관리를 위해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박정민, 「조선 전기 관요백자의 명문이 갖는 二元的 성격」, 『미술사학연구』290·291, 한국미술사학회, 2016.
윤용이, 『韓國陶瓷史硏究』, 文藝出版社, 1993.
이혜옥, 「조선전기 수공업체제의 정비」, 『역사와 현실』33, 한국역사연구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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