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희(尹德熙, 1685-1776)가 1736년(영조12) 여름에 그려서 둘째 아들 윤용(尹愹, 1708- 1740)에게 준 것이다. 첨부된 부전지를 보면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9세손 윤정현(尹定 鉉, 1882-1950)은 이 그림을 공재恭齋의 그림으로 보았고, 일본인 야마다[山田]에게 드린다고 하였다. 다른 한 장의 부전지는 매매기록으로 보이는데 정황이 분명치 않다.
윤덕희의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경백敬伯, 호는 낙서駱西이다.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현손이자 윤두서의 아들이다. 아버지 윤두서의 영향으로 전통적이고 중국적인 소재의 도석인물 道釋人物, 산수인물, 말그림을 잘 그렸다. 관직은 정릉령貞陵令을 지냈다.
윤용의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이다. 윤두서의 손자이며 윤덕희의 둘째 아들이다. 할아버지 두서와 아버지 덕희로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이어받고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33세로 요절하였다. 그림은 집안의 가풍을 계승하여 초충도草虫圖에서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였고, 산수화는 가법으로 정착된 남종화풍南宗畵風을 따랐으며, 풍속화에서는 할아버지의 회화세계를 연상 하게 하는 <채애도採艾圖>, <수하필서도樹下筆書圖>, <홍각춘망도紅閣春望圖> 등을 남겼다.
[수록처]
1. 『幽玄齋選 韓國古書畵圖錄』, 1996, No.63.
2. 포스코미술관, 『The Hidden Chapter-오백 년 만에 돌아온 조선서화』, 2025.
丙辰夏, 白蓮逋翁, 寫與二子愹.
병진년(1736, 영조12) 여름, 백련포옹白蓮逋翁이 그림을 그려서 둘째 아들 용愹에게 준다.
[인문] 會心樓, 敬伯
尹斗緖,號恭齋,文章德行,表著一世,工於六鞱算數, 世稱公輔器.官至嘉善大夫·戶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五衛都摠府都摠管,成均進士,今爲二百四十年.
윤두서는 호가 공재로 문장과 덕행으로 온 세상에 높이 드러났다. 육도六鞱 병법과 산수에 뛰어나 세상에서 정승이 될 그릇으로 일컬어졌다. 관직은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이르렀고, 성균진사이며, 지금부터 240년 전에 태어났다.
隆熙四年一月日,九世孫尹定鉉,奉獻于山田氏.
융희 4년(1907) 1월 모일에, 9세손 윤정현尹定鉉*이 산전씨山田氏에게 드린다.
*윤정현은 행적이 자세하지 않다. 1909년에 해남군海南郡 향교직원鄕校直員으로 임명된 기록이 보인다. 《承政院日記 純宗 3年 6月 10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