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봉우리의 형태를 한 뚜껑의 손잡이 아래에는 4단으로 구획하여 다양한 형태의 연판문대蓮瓣文帶가 백상감으로 시문되어 있다. 또한 뚜껑의 연꽃봉우리 손잡이 아래 1단에 시문된 연판문대에는 내화토받침을 사용하여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형태의 분청사기 뚜껑은 삼성미술관 Leeum 소장의 <분청사기상감연판문개粉靑沙器象嵌蓮瓣文蓋>와 유사성을 살펴볼 수 있다[참고도판1]. Leeum 소장의 뚜껑은 ‘계양군태장桂陽君胎藏’의 일괄 유물 중 하나이다. 공반된 태지석胎誌石에 음각된 ‘皇明宣德二年正米八月十二日丑時生, 桂陽君璔胎藏, 皇明正統四年己未年五月二十四日 立石’의 지문誌文이 있다. 계양군(桂陽君, 1427-1464)은 세종世宗의 둘째 서자이다. 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분청사기상감연판문개粉靑沙器象嵌蓮瓣文蓋>는 평원대군의 안태용 자기로 사용된 작품이다. 평원대군의 안태용 분청사기 또한 본 작품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작품이다. 평원대군(平原大君, 1427-1445)은 세종의 일곱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참고도판2]. 계양군과 평원대군은 모두 세종의 아들로 그들의 태호를 넣은 석함의 뚜껑을 통해 본 작품 또한 같은 용도로 사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분청사기상감연판문개>는 15세기 전반 제작되어 왕실에서 안태용 자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호암미술관, 『粉靑沙器名品展-湖巖美術館 所藏』, 1993.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나라의 복을 담은 태항아리』, 2018.
[작품수록처]
조선관요박물관, 『조선도자수선』, 2002.
[참고도판]
1. <분청사기상감연판문개粉靑沙器象嵌蓮瓣文蓋>, 1439, 高 18.4, 底徑 27,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2. <분청사기상감연판문개粉靑沙器象嵌蓮瓣文蓋>, 15세기 전반, 高 18.1, 底徑 26.5, 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