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는 묵란墨蘭과 산수를 잘 그렸고,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를 중시하며 전형적인 남종문인화의 경지를 개척한 대표적인 학자이자 뛰어난 서화가이다. 김정희는 특히 난을 그리는 것이 화법 중에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고 또 서예의 예법隷法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상단의 글은 이와 같이 김정희가 난을 그릴 때 중요시한 생각을 행서로 정성스럽게 쓴 것이다. 하단의 난초는 전체적으로 담묵淡墨으로 그려졌는데, 화면 왼편에서 힘차게 솟아올라 오른쪽으로 유연하게 뻗어나간 난 잎의 구도가 자연스럽고 조화롭다. 또한, 길게 뻗은 난 잎은 잘 쓴 서예와 같이 비수의 변화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탁월한 붓의 운용을 잘 보여준다.
雖有工於畵者 未必皆工於蘭 蘭於畵道 別具一格 胸中有書卷氣 乃可以下筆
비록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라 해도 반드시 난을 잘 치는 것은 아니다. 난은 그림을 그리는 도에 있어서 특별한 어떤 격格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흉중에 서권기書卷氣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장] 正喜印, 金正喜印
[작품수록처]
『古美術同好人 秋史誕生二百周年紀念展』, 白岳美術館, 1986.
『去蕐趍實』, 공아트스페이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