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중앙의 여래如來를 중심으로 보살菩薩, 나한羅漢, 사천왕四天王, 십대제자十大弟子,
팔부중八部衆, 금강역사金剛力士 등의 권속을 대칭으로 배치한 전형적인 군도식 구성을 하고 있다. 불상
뒤에 봉안하기 위한 불전 봉안용 불화로 화면 높이 286㎝, 가로 210.5㎝에 이른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짙은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일부 백분을 사용해 얼굴을 칠하기도 했다. 좌우 하단에
화기畵記가 적혀있는데, 여래의 좌측에는 불화 조성 시 소임과 그 아래 명단이 적힌 연화질緣化秩이,
우측에는 사찰의 운영 본사질本寺秩의 명단이 적혀있다.
중앙의 여래는 구품인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어 서방정토의 아미타여래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여래 아래쪽 보살은 지물持物을 보건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임진왜란壬辰倭亂·병자호란丙子胡亂의 큰 전란으로 상처 입은 민심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정토 신앙이
호응 받았으며, 본 <아미타여래설법>도 역시 화기를 통해 1715년 황해도 황주 심원사 극락전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황주 심원사는 고려 초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고려 말에 이르면 사세가 기울어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이 중수했다고 한다. 16세기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되었으며, 강희
48년(1709) 승려 수옥修玉이 다시금 중건에 힘썼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황해도병마우후黃海道兵馬虞候
이여택李汝澤이 쓴 사적비寺跡碑가 남아 있어 이 같은 연혁을 살펴볼 수 있다.
본 불화는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대구 동화사 · 안동 봉정사의 <아미타설법도> 등의 불화와의 비교를 통해
당시 불화 제작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康熙五十四年 乙未 七月 十一日 黃海道 黃州 東面
慈悲山 心原寺 極樂殿 佛壇幀 新畵○○ 爲奉安
강희 54년(1715) 을미 7월 11일 황해도 황주 동면
자비산 심원사 극락전 불단탱 신화 ○○ 위봉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