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 한국의 최대 규모의 불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김제 금산사 미륵불입상 조성 불사는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 불사였다. 이는 조선시대 이루어진 일반적인 불사와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당시 입찰에는 전통적인 화승의 계보를 이어받은 금용 일섭과 일본에서 조각을 전공한 근대 조각가라 할 수 있는 김복진이 참여하였다. 결과적으로는 김복진의 작품이 선택되면서 현재 금산사에는 이를 바탕으로 조성된 11.82m의 미륵장륙상이 봉안되어 있다. 단순히 두 사람의 이력으로만 보면 근대기에 이루어진 전통과 근대의 경쟁 구도로
볼 수 있으며 결국 근대기 새로운 기법의 승리로 보여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이와 상반되었으며 이는 두 사람의 이후 작품 활동과 한국 불교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35년 금산사 미륵전에서 큰 화재의 발생으로 인하여 미륵불이 소실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면 1935년 3월 9일 오후 11시 경 미륵전에서 발생한 화재가 다음 날인 새벽 1시 30분에 진화되었지만 미륵전에 안치된 미륵불이 소실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의 금산사 주지였던 황성렬 주지는 이를 복원하기 위해 시주를 모아 1만 6천여 원으로 새로운 미륵불입상을 조성했던 것 같다. 당시 입찰에 관한 기록은 금용 일섭의 연보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7월 23일부터 8월 13일까지 김제군 금산사 미륵대불 소조상을 조성하는데 지원자 입찰 작품이 높이 3자 3치의 입불이었다. 화원은 김보응, 김복진, 김일섭, 이석성이었다. 심사위원은 박한영 선생과 김은호(조선미전의 심사위원이며 조선의 일류화가)였는데, 일섭의 작품이 가장 유망하다고 호평을 받다.” 김일섭은 금용 일섭 본인이며 김보응, 이석성은 일섭과 같은 계보의 화승들로 생각된다. 따라서 지원자는 김복진과 일섭이었다. 일섭의 기록에서는 일섭의 작품이 호평을 받았다고 했으나 결국 당선된 것은 김복진의 작품이었다. 왜 일섭의 작품이 아닌 김복진의 작품이 선택된 것이었을까?
두 사람이 입찰에 제출했던 작품은 현재 각각 다른 사찰에 봉안되어 있다. 김복진의 작품은 공주 신원사 소림원에 봉안되어 있으며 일섭의 작품은 제주 정광사에 봉안되어 있다. 두 사람의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불신의 표현이다. 김복진은 드러난 미륵불의 가슴을 실제 인체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지만 일섭은 평평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김복진의 미륵불입상은 불신에 딱 붙는 대의의 표현으로 불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일섭의 상은 두껍고 무거운 느낌으로 불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섭은 조선시대 불교 조각 양식의 흐름을 충실히 반영하여 미륵불입상을 조성했다. 일섭의 작품에 나타나는 평판적인 가슴과 두꺼운 대의 표현 등은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복진의 작품은 언뜻 보면 일본의 가마쿠라시대 등에 보이는 불상의 양식으로 생각될 만큼 사실적인 불신의 표현과 이를 드러내는 얇은 대의가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은 비단 일본 불상의 양식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또한 불신을 실제 인체에 가깝게 표현했으며 이러한 불신을 드러내는 얇은 대의 표현은 이미 인도에서부터 존재하여 통일신라시대까지 나타난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김복진의 작품이 선택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내려온 금산사의 명맥을 표현하는데 적합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즉 근대 조각가이면서도 오히려 전통 양식과 금산사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을 조성한 것은 김복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문제일 것이다. 전통은 무엇이며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전통과 역사를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그 뿌리와 전개에 대해 보다 능동적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마이아트옥션, 김현우
[참고문헌]
《사료》
『金山寺事蹟』
<金堤 金山寺 慧德王師塔碑>, 「母嶽山金山寺五層石塔重創記」
『三國遺事』
『宋高僧傳』
日燮 『年譜』
《단행본》
김경집, 『한국근대불교사』, 경서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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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朝鮮寺刹史料』上, 文現,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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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六堂 崔南善 全集』, 역락, 2003.
《논문》
각진, 「금산사의 미륵신앙」, 『석림』31, 동국대학교 석림회, 1997.
김영희, 「1935년 금산사 미륵불 조성 입찰 –사찰불사를 둘러싼 전통과 근대의 경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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