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남긴 조선의 문인, 강세황
옹(강세황)은 일찍이 자화상을 그렸는데 홀로 그 정신을 획득하여 세속 화가들이 모습을 묘사하는 것과는 현저히 달랐다.
내 죽음을 생각하니 묘지와 행장을 다른 이에게 구하는 것보다 스스로 평상시의 대략을 옮겨놓는 것이 그래도 비슷하지 않겠는가?
마침내 붓 가는대로 써서 자식들에게 남긴다.
翁嘗自寫眞 獨得其神情 與俗工之徒傳狀貌者逈異
仍自念身歿而求誌狀於人 曷若自寫其平日之大略
庶得髣髴之仕耶 遂信筆書此. 姜世晃,
『豹翁自誌』, p. 471.
길고 좁은 얼굴형에 두터운 입술과 긴 코, 좁은 눈 사이의 거리와 높게 붙어 있는 눈썹.
의복은 관리가 쓰는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야복野服인 옥빛의 도포를 입고 있다. 바로 시詩·서書·화畵에 능통하여 삼절三絶로 불린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모습이다. 1782년, 70세의 강세황이 직접 그린 것으로, 예법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차림새임에도 오히려 자화상에 녹여내고자 했던 강세황의 “어떤” 의중을 명확하게 담고 있어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서양화 중에는 뒤러나 렘브란트의 자화상처럼 종종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지만 조선시대 알려진 자화상은 매우 드물다.
심지어 어떤 인물은 자화상은커녕 초상화 그리기를 거부해 제자가 몰래 창문 틈으로 엿보아서 스승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런데 강세황의 초상만 해도 현재 모두 10여 점이 확인되고 이 중 여러 점의 자화상이 알려져 있다. 강세황은 자신의 모습을 왜 이렇게나 많이 담았을까?
강세황이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자 했던 노력이 아들 강관(姜倌, 1743-1824)의 「계추기사癸秋記事」에 담겨있다.
‘일찍이 영조 병자년(1756년) 여름 4월에 아버지께서 소품의 자화상을 그리신 적이 있다. 이것이 아버지 초상화의 시작인 셈이다. 그 뒤 여러 번 화사들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으나 똑 닮는데 미흡하였다.’라고 한 바 있다. 또 강세황보다 한참 어린 나이임에도 인물을 잘 그렸던 임희수(任希壽, 1733-1750)에게 ‘강세황이 자화상을 그릴 적에 여러 번 화본을 바꾸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희수에게 부탁했는데 희수가 광대뼈와 뺨 사이에 대강 두어 번 붓을 대자 똑같게 되었으므로 강세황이 크게 탄복하였다.’라는 일화가 전해진다. 임희수의 몰년이 1750년, 즉 강세황의 38세인 것을 생각하면 늦어도 30대 때부터는 자신과 꼭 닮은 초상화와 자화상을 남기는 것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강세황의 자화상을 연구한 최석원은 54세(1766년)의 강세황이 쓴 『표암자지豹翁自誌』를 분석하고 있는데, 당시는 강세황이 중앙 정치에서 소외된 채 안산에서 머무르던 때였다. 당시 강세황이 처한 상황을 바탕으로 아래 두 문장 속 행간의 의미를 본다면, 정치 권력에 대한 강세황의 선망과 사후에 자신을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후일에 이 글을 보는 사람이면 반드시 그 세대를 논의하고 그 사람을 상상하여 보면서 그가 불우하였음을 슬퍼하고 옹을 위하여 탄식하며 감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옹을 알기에 충분할 것이냐.
옹은 벌써 스스로 기꺼이 여겨 가슴 속을 넓고도 평탄하게 하여 터럭만큼도 슬퍼하며 자득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後之覽此文者 其心有論其也 想其人 悲其不遇 爲翁而欷歔感慨者 然是鳥足以知翁哉翁已自能怡然而樂
胸中浩浩焉坦坦焉無毫髣慽嗟不自得自矣. 姜世晃, 『豹翁自誌』, p. 472.
후대에 자신의 상황을 남기고자 했던 강세황의 마음이 하늘에 닿은 듯하다.
이인좌의 난으로 벼슬길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표암은 61세 늦은 나이에 출사하여 71세 때 이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삼대 째 기로사耆老社에 입사하여 조선왕조를 통틀어 단 다섯 가문에 불과한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의 영예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자긍심을 담아 새긴 ‘삼세기영’이라고 적힌 도장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다.
그의 수많은 작품과 평론, 그리고 그가 키워낸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 마이아트옥션, 김경인
【참고문헌】
변영섭, 『표암강세황회화연구』, 일지사, 1988.
이경화, 「관모를 쓴 야인: 강세황의 70세 자화상과 자기인식의 표현」,
『미술사와 시각문화』제20호,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2017.
이태호, 「조선후기 초상화의 제작공정과 그 비용: 이명기 작 <강세황칠십일세상에 대한 계추기사를 중심으로,
『표암 강세황 展』, 예술의 전당 서울서예박물관 편, 2004.
최석원, 「姜世晃 自畵像 硏究」,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미술사전공 석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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